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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광/미국 위스콘신대 교수·환경공학

24일 치러진 서울시의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는 투표율 미달로 개표하지도 못한 채 종료됐다. 투표율 25.7%로 법정 개함 기준에 미달했기 때문이다. 이제 서울시내 학생들의 무상급식에 대한 시민들의 판단은 끝났다. 남은 문제는 재원 조달이다. 무상급식이라는 정책은 달콤하다. 하지만 그 대가는 두고두고 지불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학교 무상급식 실태는 어떠한가.

먼저 미국의 학교에서 무상급식을 시작한 것은 1946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 때였다. ‘국가학교점심사업’은 저소득층의 탁아소,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학기 중, 방과 후, 방학 동안 무료·할인급식을 한다. 2011년 3인 가정의 수입이 약 2500만원 미만일 경우 무상급식, 약 3500만원 미만일 경우 할인급식을 받는다. 위스콘신주에서 2009 ~ 2010년 무상·할인급식을 받은 학생이 48%였다. 이번 8·24 주민투표에서 서울시가 제안했던 ‘소득 하위 50%의 학생을 대상으로 단계적으로 무상급식한다’는 개념과 매우 비슷하다.

영국도 미국과 비슷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는 점심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 점심 시간이 길다. 학생들은 집에 가서 먹기도 한다. 학교에서 먹을 경우 소득에 따라 지불한다. 흥미롭게도 독일과 캐나다는 점심을 학교에서 제공하지 않는다. 이웃 나라 일본은 소득에 관계없이 음식 재료비만 지불한다. 스웨덴은 1993년부터 무상급식이 실시됐다.

아들은 미국에서 태어나서 계속 미국에 살고 있지만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중학교 때 김밥과 주먹밥을 번갈아 가지고 가 샌드위치를 싸온 미국 친구들과 나눠 먹었다. 학교에 신청하면 점심을 먹을 수 있지만 맛도 없고, 줄 서기도 싫고, 빨리 먹고 나서 나머지 점심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싸 간 것이다. 일부 학생들은 학교 음식에 불만이 많고 학부모들도 불신해서 집에서 싸 온다고 한다. 최근 학교 음식을 먹는 학생들이 비만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를 학부모들은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점심을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선택하게 한다. 매우 실용적인 미국다운 발상이다.

한국은 중학교까지만 전면 무상급식을 한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저소득층 가정에서는 고등학교까지 무상급식을 하는 것이 오히려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복지가 옳지 않은가? 무상(無償)이라는 말은 누구나 듣기 좋은 단어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누군가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의타심이다.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동력이 새마을운동이다. 기본정신은 근면(개척정신), 자조(주인의식), 협동(공동체 정신)이다. 자조 정신이란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노력하는 것이다. 의타심이 사회를 뒤덮는다면 어느 누구도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파이를 키우는 데 힘을 써야 모두 잘 산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한다. 그러나 현재 경제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나눠 갖기를 원한다. 그래서 동반성장, 이익공유제까지 거론되고 있다.

과연 지금 어렵다고 발목을 잡고 퍼주기식으로 가야 하는가? 퍼주기만 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세계적으로 또 다시 금융위기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인 빈곤층이 45%에 달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왜 이들은 돕지 않고 전면 무상급식으로 복지 예산을 써야 하는지 의문이다. 결국 무상급식은 선거에 이기기 위한 정치적인 의도에서 만들어졌고 국민은 얕은 술수에 넘어간 것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유럽의 국가들이 복지를 늘렸다가 경제위기로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축소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회적·경제적 시련을 혹독히 겪고 있다. 무상급식에 대한 서울시의 투표 결과가 퍼주기식의 복지에 대한 신호탄이라고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 모두 힘을 합쳐 경제성장을 이룩해야 한다. 그래야 노인 빈곤층 문제,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나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을 위해 국가의 미래를 담보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