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수사를 지휘할 부장검사부터 임관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평검사까지 검사들이 썰물처럼 검찰 조직을 빠져나가고 있다. 권력형 부정부패와 대형 비리 등 사회악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검사들이 소명의식을 상실한 채 ‘검사의 길’을 중도에서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관련기사 8면

격무와 기대에 못 미치는 처우, 대국민 신뢰 저하 등 요인 외에도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른 실망감까지 겹쳐서 나타난 결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검찰 조직 자체의 안정성 훼손은 물론 경험과 역량을 갖춘 검사들의 부재에 따른 수사력 약화로 각종 범죄에 대한 국가 전체의 대처 능력 상실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23일 검찰에 따르면 부장검사 등 검찰 중간간부 인사가 이번주 후반쯤 단행될 예정인 가운데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 법무부 등 핵심 기관을 중심으로 사의를 표명하는 일선 검사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박철(사법연수원 22기)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장이 법무부에 사표를 냈고 김승식(사법연수원 21기) 대검 감찰1과장, 이상철(사법연수원 23기) 법무부 국가송무과장도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득신(사법연수원 25기) 대구지검 공판부장도 지난 17일 검찰 내부 통신망인 e프로스에 사의의 글을 남겼다. 나기주(사법연수원 22기) 대구지검 형사3부장도 22일 비슷한 취지로 검찰을 떠나겠다는 글을 올렸다.

최근에는 임관한 지 1년을 갓 넘은 초임검사를 비롯해 평검사들도 사표를 내고 있다. 지난해 2월 신규 임용된 서울중앙지검의 김모 검사는 최근 “검찰 조직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며 사표를 냈다. 광주지검의 권모 검사, 서울중앙지검의 노모 검사도 검찰을 떠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부장급 검사는 “과거와 달리 열정이나 희망, 소명을 갖지 못하고 조직을 떠나려는 검사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검사들의 ‘엑소더스’ 밑바닥에는 무엇보다 검사로서의 소명의식 상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스폰서 검사 비리 등으로 검찰에 대한 대국민 신뢰도가 급락하면서 조직에 대한 실망감도 원인이다. 경찰과의 수사권 조정 파동을 거치면서 추락한 검찰 위상에 실망하고 사표를 내는 경우도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검사들에 대한 대형 로펌의 ‘유혹’도 검사들의 사표 행렬이 이어지게 만드는 요소다. 명예보다 돈을 택하는 풍조가 검사들의 사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검찰 정기인사에 임박해 사표를 제출하는 경우가 최근 이어지고 있는데 올해는 숫자도 많고 대부분 한창 일할 유능한 검사들이라는 것이 문제”라면서 “주객관적으로 위기에 처한 검찰의 현실을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서 풀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수진기자 sujininva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