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26일 오전 2시 서울 종로구 관철동 ‘먹자골목’의 업소들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심만수기자 panfocus@munhwa.com

“빌딩촌은 서울 도심인가 싶을 정도로 자정이 넘으면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도 여전히 유흥가는 업소들이 뿜어내는 조명들로 불야성을 이루죠.”

서울 도심을 돌며 야간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는 오창석(63)씨는 지난 26일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야간 조명을 끄도록 규제하면서 확실히 서울의 불빛이 줄어든 것 같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씨의 증언대로 지난 3월8일 ‘야간 조명 강제소등’ 조치가 시행된 이후 5개월째에 접어드는 현재 서울시내 주요지역의 야간조명 소등 실태를 살펴보니 주요 기업의 본사와 백화점 등 대형점포 등이 밀집해 있는 ‘빌딩촌’은 소등조치가 잘 이뤄지고 있는 반면 주요 유흥가는 여전히 화려한 조명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규제조치 기준에 따르면 단란주점과 유흥주점 등 유흥업소는 오전 2시 이후에, 아파트, 오피스텔 등은 밤 12시 이후에 야간 조명을 반드시 소등해야 한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자동차 판매업소 등은 영업시간 이후 소등을 해야 하며 주유소와 LPG충전소 등은 영업 중이라 하더라도 야간에는 조명의 절반을 소등 해야 한다. 이 규정을 어기고 단속에 적발될 경우 에너지이용합리화법에 따라 최고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일반 음식점이나 노래방, 일반 주점 등은 강제사항은 아니지만 ‘권고사항’으로 영업시간 외 소등하도록 돼 있다.

이런 조치에 따라 사실상 외부 미관을 위해 한밤중에도 화려한 불빛을 비추던 대형 점포들과 빌딩들은 비교적 소등조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지난 26일 오전 2시쯤 서울 중구에 위치한 두 백화점은 모두 상호명을 비추는 조명은 물론 건물 외관을 화려하게 수놓던 외부조명을 모두 소등한 상태였다. 대형 쇼핑몰과 대기업 본사, 금융기관이 들어선 곳 또한 대부분 외부 조명을 꺼 주변 도로는 화려했던 한낮의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까지 풍겼다. 유일하게 불빛을 비추고 있던 인근 한 편의점의 아르바이트생 김모(30)씨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주변 대형 빌딩 대부분이 소등 조치를 하는 것 같다”며 “영업 외 시간에도 화려한 조명을 켜 두었던 과거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부 유흥가는 유흥업소를 비롯해 24시간 일반 음식점과 호프집 등 일반주점 등이 내뿜는 조명들로 화려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었다. 같은 시각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 찼던 중구 빌딩촌과 달리 청계천을 두고 맞닿아 있는 종로구 관철동의 이른바 ‘먹자골목’은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전 2시 이후 야간 조명을 소등해야 할 의무가 있는 유흥주점과 단란주점 일부는 소등을 하지 않은 채 성업 중이었고, 비록 권고 대상이지만 영업 이외에 소등을 해야 하는 커피숍, 통신사 등 일반 매장과 일반 음식점 등 또한 간판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이곳에 위치한 한 단란주점 종업원 최모(22)씨는 “에너지 절약한다고 간판 조명을 꺼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사장님이 조명을 끄지 말라고 했다”며 “야간 조명 소등 문제로 구청에서 단속을 나온 적도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흥업소 업주는 “장사해야 하는데 간판 불을 꺼놓으면 손님이 오겠냐”며 “단속반이 뜨면 다른 가게 사장이 전화로 알려주기로 약속했고 사실 크게 신경 쓰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흥가인 마포구 신촌역 일대 또한 상황은 비슷했다. 인접 차로를 환하게 비출 만큼 거대하고 화려한 조명을 자랑했던 한 나이트클럽은 규제시간인 오전 2시가 한참 지났음에도 소등을 하지 않았으며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에 위치한 단란주점들도 외부 간판은 물론 거리에 설치한 애드벌룬의 조명조차 소등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한 나이트클럽은 업소명을 밝히는 네온사인 일부만 소등했을 뿐 주변의 화려한 조명은 켜둔 채 “우리는 소등시간을 지킨다”며 ‘눈 가리고 아웅’식의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인근의 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이모(24)씨는 “소등시간에 맞춰 간판불을 끄거나 자발적으로 소등하는 업소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며 “이를 단속하는 공무원들도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실제 강제소등 단속에 적발돼 과태료를 물게 된 업소는 총 7곳으로 현장에서 보이는 위반사례와 비교해 보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강남구, 종로구에 위치한 유흥업소 6곳과 서초구에 위치한 자동차 판매업소 1곳 등 총 7곳이 과태료를 부과받았다”며 “정기적으로 단속을 나간다기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단속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일부 시민들은 비교적 소수인 유흥업소와 달리 규제에서 자유로운 다수의 야간 업소나 대형 의류매장 등의 소등 참여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남역 역삼동의 유흥가를 지나던 시민 김모(24)씨는 “유흥주점 몇 곳만 소등해서 될 일이 아니다”며 “권고 대상일 뿐인 노래방, 음식점 등이 이렇게 환하게 불을 켜고 있는데 얼마나 절전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시민 임모(여·48)씨 또한 “명품거리나 쇼핑거리 등의 매장은 영업 이후에도 쇼윈도를 화려하게 비추는 등 에너지 절약 참여도가 미진하다”며 “보다 많은 업주와 시민들이 소등에 참여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윤정아·박준우·박정경기자 jayo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