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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포퓰리즘적 발상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학교무상급식, 반값대학등록금 등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있고, 여야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포퓰리즘적 공약개발에 골몰하고 있다. 네덜란드 경제기적의 설계자로 불리는 빔 콕(73·사진) 전 네덜란드 총리는 포퓰리즘에 정면으로 맞선 정치 원로로 유명하다. 서울시 노사정모델협의회 주최 국제회의 참석차 방한한 그를 13일 오후 만나 포퓰리즘 극복방안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원로로서, 한국의 진보정권과 보수정권 양쪽 모두에서 인기가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국내외적으로 처한 위기의 해법을 모색하는 데 있어 정치적 입장이 중요한 건 아니다. 정부가 진보냐 보수냐는 것보다 정부가 얼마나 사회적 지지를 받고 합의를 만들어내는 데 능력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내 집권 때 만들어진 폴더 모델(폴더는 간척지를 뜻하는데, 국토 대부분이 해수면보다 낮은 네덜란드가 국민이 협동단결로 간척지를 만들었듯이 노사정의 대화와 타협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한 모델을 의미함)과 노사정대타협인 바세나르협약에 관심이 많은데, 이것의 핵심은 기업과 노동자집단이 상호 극단을 피하고 합의의 정신을 바탕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만든다는 전제를 지켰다는 점이다. 한국은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훨씬 강해졌는데, 현재의 경제위기는 더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다. 이것은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일 수도 있고 보수와 진보 간의 연대일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최근 사회 곳곳에서 포퓰리즘적 정책이 제기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는데.

“전세계적으로 지금은 아주 어려운 시대다. 그런 도전 속에서 네덜란드에서도 외국인 유입반대 등의 포퓰리즘적 목소리가 힘을 얻고, 미국에서도 티파티 운동이 본격화하는데 이것은 포퓰리즘의 한 유형이다.”

―한국의 여야 정치권은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포퓰리즘적 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데.

“물론 대중의 표는 무시못한다. 유권자들이 의원과 대통령을 투표로 뽑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퓰러 아이디어는 환상을 만들어낼 뿐이다. 그것은 명백한 실수다.”

―원칙은 그렇지만, 어느 정치인이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유혹을 이겨낼 수 있겠는가.

“네덜란드에서는 어느 한 정당이 집권하기보다 연립정부를 구성하기 때문에 선거에 아주 민감한 편이다. 선거 전 어느 정당과 연대할지 생각하고 선거 후 정부구성 협상을 한다. 그러니 유권자의 표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후보자들은 당장의 이해관계 때문에 책임질 수 없는 공약을 내놓지만, 그런 정치인은 차기 선거에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치 무관심층이 커지면 포퓰리즘 경향이 확산되고 이것은 민주주의의 위기로 갈 수 있다.”

―정치인으로서 어떻게 포퓰리즘을 극복할 수 있었나?

“완전히 극복하진 못했지만 가능한 한 거리를 두려고 했다. 정치 리더라면 국민이 뭘 원하는지 알아야 하지만, 무엇이 국가에 좋은 것인가도 생각해야 한다. 국가의 장기적 목표와 국민이 당장 원하는 것 간에 갈등이 있을 수 있는데 정치인은 전체를 보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수단을 쓸 경우 당장은 효과가 있지만 일반 국민들도 어떤 시점에 가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치인은 포퓰리즘에 경도되지 말고, 좀더 용감하게 사회의 공동선(common good)을 바탕으로 국가적 이슈를 생각해야 한다.”

―폴더 모델이나 바세나르협약이 글로벌시대에도 여전히 유용하다고 보는가.

“바세나르협약을 만들던 때와 지금은 전혀 다른 시대다. 새로운 시대의 난제를 풀기 위해 국가의 주주들이 어떤 합의를 새롭게 만들 것인가 대화해야 한다. 글로벌리제이션에 대해 지지냐 반대냐가 아니라, 글로벌시대의 취약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사회적 협의를 해나가야 한다. 글로벌사회는 위너(승자)와 루저(패자)가 극명하고 위너는 더 많이 루저는 더 적게 되는 상태로 점점 치닫는데, 루저가 양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교육이 중요하다. 또한 루저도 목소리를 내게 해서 사회적 대화를 해나가도록 해야 한다.”

◆빔 콕 = 네덜란드 사회민주주의 진영의 대표적 정치인. 노동당 당수(1986~2001) 및 총리(1994~2002) 시절 노사정합의인 바세나르협약을 탄생시키며 네덜란드 경제기적을 이끌었다.

글=이미숙기자, 사진=곽성호기자 muse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