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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동일본 대지진’ 발생 이후 국내외에서는 이 사건 후유증으로 인해 일본사회 저변에 과거 간토(關東)대지진 때와 같은 경향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지난주 열린 한국국제교류재단 20주년 총회 참석차 방한한 강상중(61) 도쿄(東京)대 현대한국연구센터소장에게 인터뷰를 청한 것은 그가 재일 한국인 2세 출신으로써 이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보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는 지난 7일 만남 때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 후 일본에서는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절망이 커지면서 지방자치단체 중심으로 일본식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라고 할 만한 제3세력이 뜨고 있지만, 그런 움직임이 극우적 국가주의로 전면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후쿠시마 사고 후 일본인들은 오히려 “혼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면서 “국제협력주의의 필요성을 더 크게 느끼고 있다”는 게 그 근거였다. 한국 국적의 제1호 도쿄대 교수인 그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소식을 서울에서 듣게 되어 기뻤다”면서 “평창의 성공은 한국의 역동성에 전세계인들이 매료된 결과”라며 얘기를 시작했다.

―동일본 대지진이 11일로 4개월을 맞는데 요즘 일본사회의 기류는 어떠한가.

“한마디로 조용한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인들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이틀 만에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제2의 패전이라고 보고 있다. 제1의 패전은 히로시마(廣島), 나가사키(長崎)에 원폭이 투하되면서 이뤄진 것이지만, 제2의 패전은 자연에 의한 후쿠시마 원전 파괴라는 점에서 더 실의가 깊다. 앞으로 더 강력한 지진 등이 오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이 간토대지진 이후 재일 한국인을 학살하며 군국주의로 갔던 것처럼,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도 유사한 경향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많았는데.

“1923년 간토대지진이 발생한 뒤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기까지 일본에 있던 한국인 60만명이 사망했다. 그 당시는 경제가 극도로 불안한 대공황시대였고 군국주의 시대였다. 그러니 간토대지진 이후 사회 기류는 군국주의쪽으로 갈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지금은 일본에서 군부가 다시 커질 가능성은 없다. 물론 미국경제가 침체하고, 일본의 재정적자가 커지면서 경제적으로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수는 있겠지만 국가전체가 우경화하며 국가주의로 가기는 힘들 것이다. 오히려 일본문제 해결을 위해선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커지고 있다. 일본에서 요즘 제일 걱정하는 것은 재정적자가 극심해지면서 재정파탄 상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일본이 거대한 그리스같이 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우려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국제 사회에서는 일본 정치계의 대응이 지나치게 수동적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

“맞는 말이다. 요즘 일본의 정치계는 만주사변 전 상황과 유사한 점이 있다. 당시 일본엔 정당정치에 대한 절망감이 상당했는데 요즘 상황은 그때와 비슷하다. 막강한 군부는 없어도 제3의 세력이 조금씩 대두되는 움직임이 있는데 그것은 중앙정치 무대가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그런 경향속에서 한일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있는가.

“그간 한국이 독도 문제 등에 대해 상당히 성숙하게 대응하면서 한일관계는 많이 발전했다. 그러나 지자체장들이 네오콘적 경향을 보이면서 재일 참정권 반대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고, 주변국과의 영토문제에 대해서도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독도문제를 둘러싸고 한일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있고 한국인들이 많이 실망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재일 한국인으로서 독도 문제에 대한 시각은.

“영토문제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타협이 어려운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일 간에 독도문제에 대한 우선순위가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인에게 독도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최우선 순위의 전국민적 문제이지만, 일본인에게 다케시마(竹島)는 전국적인 이슈가 아니다. 시마네(島根)현의 한 지방문제일 뿐이다. 독도가 양국간의 국가적 이슈로 과도하게 부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독도 이슈가 첨예화하지 않는 한 한일관계는 순항할 수 있을까.

“일본은 한국에서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고, 한·미 FTA가 비준을 앞두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긴장하고 있다. 만약 한국이 일본과의 FTA에 앞서 중국과 FTA를 먼저한다면 한일관계가 아주 어려워질 것이다. 한·중FTA가 된다면 일본이 위기의식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글 = 이미숙기자 musel@munhwa.com
사진 = 정하종기자 maloo@munhwa.com

◆강상중 = 일본 규슈(九州) 구마모토(熊本)현에서 재일한국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早稻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국제정치학자로 1998년 도쿄대 학제정보학부 교수가 됐다.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높은 한국 국적의 지식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