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 최성일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책엔 글쓴이의 서문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엔 마땅히, 으레 있을 법한 머리글이 없다. 대신 편집자 머리말에는 “그가 완쾌되어 이 작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빈다”고 적혀 있다. 출판평론가인 저자는 현재 뇌종양으로 투병 중이다.

책은 저자의 13년간의 독서 이력을 고스란히 담은 사상가 서평서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다섯 권에 걸쳐 나온 같은 제목의 책을 800쪽 분량의 단권으로 새로 편집했다. 특히 이번 재출간은 투병 중인 저자가 완쾌되길 바라는 동료들의 바람이 담긴 것이라 더욱 뜻깊다. 1996년 출판저널 기자로 출판계에 입문해 여러 지면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책과 책 읽기에 대한 글을 써온 저자는 2004년 발병했던 뇌종양이 지난해 재발해 힘겹게 투병하고 있다.

리뷰 대상은 해외 사상가의 번역서를 중심으로 ‘필자의 개인적인 취향+저서 또는 번역서 2권 이상’이라는 기준에 따라 선별했다는 게 편집자의 설명이다.

이런 기준에 따라 책에 등장하는 인물은 218명. 이 가운데 외국 저자와 사상가는 208명이다. 루쉰, 미셸 푸코, 질 들뢰즈, 노엄 촘스키, 리처드 도킨스, 간디, 마더 테레사 등 동서양 주요 사상가의 저작을 통해 그들의 철학을 폭넓게 살펴보고 있다. 한국인으로는 리영희, 김민기, 김산, 우석훈, 박노자, 김기협 등 10명이다.

책은 일본의 문예평론가이자 사상가인 가라타니 고진을 시작으로 가나다 순으로 배치해 사전형으로 만들어졌다. 부제는 ‘우리 시대 지성인 218인의 생각 사전’이다.

사전 형식을 띠고 있지만 인류에게 새로운 생각의 방향을 제시한 철학자는 물론 작가·역사학자·정치학자·예술가 등 다양한 분야 사상가들의 생각을 요약하고 정리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인문주의자를 자처한 저자의 독서 경험담을 곁들인 솔직하고 맛깔스러운 해석은 자칫 딱딱할 수 있는 사상가들의 저작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예컨대 저자는 리영희 교수의 ‘자유인, 자유인’을 읽고 루쉰을 만나게 된다. 루쉰의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에 감동받은 리 교수에게 루쉰은 사상적 은사였던 셈이다.

저자는 그러나 루쉰의 대표작인 ‘아Q정전’과 ‘광인일기’는 영 재미가 없었고 ‘작은 사건’이라는 제목의 짧은 소설에 감동 받아 루쉰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또 처음엔 루쉰의 책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한참 지나서야 그건 자신이 무식한 탓이었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루쉰을 소개하는 대목엔 일본 근대의 걸출한 문학가인 나쓰메 소세키, 한국의 청마 유치환도 언급하며 작품을 비교하기도 한다. 저자가 가수 김민기를 다룬 이유는 위대한 가수 겸 작곡가의 업적을 수수방관하는 행태가 못마땅해서다. “김민기는 한국의 밥 딜런이 아니다. 김민기는 김민기다. 나는 김민기가 폴 매카트니나 존 레넌에 꿀릴 게 없다, 아니 그들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번역서 출판의 문제점인 오역과 뜻을 알 수 없는 번역어 문장의 맹점을 지적하며 각 사상가들의 책이 국내에 어떻게 소개됐는지를 세심하게 짚어낸 점도 책의 미덕이다.

김도연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