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은 없었다. 1947년 출범 이후 64년 동안 이어져온 국제통화기금(IMF)의 유럽출신 총재 전통은 이번에도 깨지지 않았다. IMF의 24개국 집행이사국은 11번째 총재로 프랑스 재무장관 크리스틴 라가르드를 선택했다. 프랑스 출신으로는 다섯 번째이다.

IMF는 첫 여성 총재를 배출함으로써 ‘남성클럽’의 성적 보수성을 깨는 성과를 이룩하기는 했지만, 중병환자 신세가 된 유럽 대신 글로벌 경제의 막강 세력으로 등장한 신흥경제권의 권리와 목소리를 반영하는 체제개혁은 숙제로 남겨두게 됐다.

라가르드의 최대장점은 협상력이다. 노무전문 변호사 출신으로 미국 시카고에 본부를 둔 글로벌 법무법인 베이커 앤드 매킨지의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한 라가르드는 통상장관, 재무장관 재임기간 국내외의 경제적 난제들을 해결하는 데 성과를 올렸다.

특히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재정위기가 발생하자 유럽 각국의 서로 다른 입장을 중간에서 조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난 27일 프랑스 은행들이 그리스 부채에 대한 자발적 차환(rollover)에 합의한 이면에는 라가르드의 설득이 주효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고교 때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국가대표를 했고 20여년 동안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체득한 합리적 사고관, 솔직하고 직설적인 표현력 등도 라가르드의 장점으로 꼽힌다. 이번 총재 경선과정을 통해 드러났듯이 신흥경제권이 아직은 효율적인 통합을 이뤄내기 힘든 상황에서, 그나마 유럽국들을 설득해 개혁을 이뤄낼 수 있는 인물로 라가르드가 꼽힌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IMF에서 17년 동안 활동했던 에스와르 프라사드 브루킹스연구소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28일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IMF 개혁을 위해 유럽 회원국들의 팔을 비틀 수 있는 인물”로 라가르드를 평가했다.

그러나 라가르드 신임총재에게 맡겨진 과제는 만만치 않다. 우선 IMF의 형평성에 대한 비판이 만만치 않다. 특히 지난 1980, 90년대에 IMF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혹독한 경제구조 개혁을 강요받았던 신흥경제국 및 개발도상국들은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에 대해 IMF가 상대적으로 봐주기를 하고 있다며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IMF가 유럽 3국이란 한 바구니에 계란을 너무 많이 담아 자체 재정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프랑스 출신인 라가르드가 그리스 최대채권단인 자국 은행과 정부의 요구를 물리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오애리 선임기자 aer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