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팻 / 돈 쿨릭·앤 메넬리 엮음, 김명희 옮김 / 소동

뚱뚱해지고 싶어서 여자들이 마음껏 먹는 나라가 있을까? 온통 살을 빼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판국에 무슨 말도 안 되는 질문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런 나라가 있다. 아프리카 니제르에서는 살찐 몸을 성적 매력이 있고 이상적인 몸매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살이 찌면서 생긴 튼살 자국이 선망의 대상이라 인형에 튼살 자국을 뜻하는 줄무늬를 그리기도 한다. 니제르 여성에게 뚱뚱한 몸매는 존재 이유이며,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찐 살은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될 능력을 나타낸다.

인류학자 열네명이 ‘살찐’, ‘기름진’, ‘지방’, ‘비만’, ‘비옥한’, ‘살’, ‘윤택’ 등 다양한 뜻을 가진 ’팻(fat)’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비교문화적·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다. 이들은 니제르에서부터 안데스 산맥, 스페인, 이탈리아, 하와이, 캐나다 등 세계 각지에서 실시한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팻의 문화적 가치와 의미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 책을 엮은 돈 쿨릭 뉴욕대 교수와 앤 메넬리 캐나다 트렌트대 교수는 “팻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결코 자명하지도, 자연스럽지도, 보편적이지도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며 “세상은 온통 지방 논의로 넘쳐나는 듯하지만 지방을 다양한 차원에서 지성적으로 사고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자 문제의식의 출발점이다.

책에 따르면 안데스 산맥 같은 곳에서는 뚱뚱한 몸이 힘과 건강을 상징하기 때문에, 피가 아니라 지방을 빨아먹는 즉, 뚱뚱한 사람을 희생자로 삼는 일종의 지방흡혈귀인 피스타코(pishtaco)이야기가 유행한다. 피스타코 이야기는 식민 착취의 역사적 경험과 자본주의 착취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힙합 문화에서도 뚱뚱한 몸은 찬사의 대상이다. 힙합 문화는 남성의 큰 몸집을 능력과 경제적 성공의 상징이라고 여긴다. 그런가 하면 체내의 지방이 감소되고 비정상적으로 재분배되는 질병인 지방이영양증에 걸린 환자는 지방에 목말라하고 살이 빠지면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스웨덴의 10대 소녀들은 지방을 끔찍하게 싫어하고, 어떻게 하면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살을 뺄 수 있는지가 주된 관심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들이 지방을 놓고 이야기하는 방식에도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다. 실제 뚱뚱한 몸으로는 뚱뚱한 몸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없고, 살이 찌지 않아야만 자기의 몸이 뚱뚱하다거나 하는 불평을 늘어놓을 수 있다.

브라질의 중산층 여성들은 월급보다 많은 돈을 들여 지방흡입약을 구입한다. 주목할 대목은 브라질 여성에서 지방을 빼는 것은 단순한 외모의 문제를 넘어선다는 점이다. 플로칼(다이어트 알약)을 먹고 말 그대로 지방을 배출하기 시작하면서 또한 없애고 싶었던 것은 제3세계, 빈곤, 유색 인종과의 연관성이다. 그들은 그 모두를 자신의 몸에서 배설해 눈에 띄지 않도록 화장실 물에 쓸어버리고자 했다.

그렇다면 ‘뚱보 포르노’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이트 식으로 표현하면, 뚱보 포르노는 많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줌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존재한다.

책은 이렇듯 뚱뚱함에 담긴 다양한 시선을 추적하고 올리브유, 돼지기름, 스팸 등 ‘기름진’ 음식에 담긴 문화적 배경도 살핀다. 뚱뚱함을 매력적이지 않고, 건강치 못하며,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가차 없이 낙인찍는 오늘날 서구사회의 일방적 시선에서 벗어나 이 책은 ‘팻’의 다중적 의미와 다양한 문화적 함의를 살피게 한다.

김도연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