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 테라피 / 권혁란 지음 / 휴

여행이 지닌 ‘치유의 능력’을 스스로의 실전적인 체험을 통해 풀어냈다. 일상으로부터 받은 상처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 탈출구를 찾아 절박하게 떠난 여행의 기록들이 담긴 책이다. 여행지를 찾아가는 여정을 다루고 있지만 책에는 여행서에 흔히 등장하는, 가볼 만한 곳이나 맛집 따위는 없다. 여행을 떠난 저자의 관심사는 줄곧 ‘밖’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던 탓이다.

그가 들려주는 여행이야기는 보통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가볍게 떠나는 행락과는 전혀 다르다. 어긋난 사랑, 혹은 엉켜버린 우정 또는 번번이 좌절되는 이상으로 상처입은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그는 여행을 선택했다. 때로는 딸과의 소통을 위해서,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처럼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렇게 떠난 여행지에서 그는 풍욕을 하기도 하고, 단식을 경험하기도 하고, 요가를 하기도 하며 산을 오르거나 지칠 때까지 걸었다. 어찌보면 여행이라기보다는 ‘수행’에 가깝다는 느낌이 드는 대목도 있다. 이런 식으로 저자가 3년 동안 돌아본 인도와 제주의 한라산,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강화도, 지리산 둘레길, 인도네시아 발리 등에서의 여행기록이 책에 담겨있다. 이런 여행지에서 저자는 욕망을 비워내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며 세상에 한층 너그러워지기도 한다.

페미니즘 잡지 ‘이프’의 편집장 출신으로 이른바 ‘전투적인 페미니스트’로 인정받았던 저자는 여행기를 통해 마치 씻김굿이라도 하듯 세상으로부터 받은 깊은 상처를 드러내며 펑펑 울어댄다. 고통이 다소 과장됐으리라는 짐작이 들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다들 숨기고 싶어하기 마련인 자신의 치명적인 상처를 솔직하게 드러낸 글이 자못 인상적이다.

이 책을 통해 여행정보를 얻으리란 기대는 애초부터 접어야 한다. 여행에세이이긴 하지만 저자의 여행기를 토대로 해 행로를 쫓아간다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저자가 말하는 것은 여행의 방식이다. 저자는 언제 여행을 떠나야 하는지, 그 행로에서 어떻게 나를 들여다봐야 하는지,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를 자신의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매혹적인 풍광을 소개하는 화려한 문장보다, 여행지의 아름다운 사진보다, 여행의 행간 속에 불쑥불쑥 끼어드는 저자의 깨달음이 훨씬 더 여행에 대한 욕구를 자극한다.

그가 안나푸르나의 고봉들이 즐비하게 서있는 히말라야를 트레킹하면서 얻었다는 깨달음. 그걸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고맙습니다, 모두들. 그리고 나도 참 잘 못했어요. 내 발에 내가 걸려 넘어지고는 끊임없이 남탓을 해왔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어요. 말들에 걸려 그 말들을 붙잡고 악다구니를 썼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어요. 사랑한다더니, 그게 사랑이냐고, 증거를 보여달라고 너무 소리쳤어요. 미안해요, 모두들….”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