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령연금과 장애수당으로 나오는 11만8000원으로 월세 10만원짜리 쪽방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A(여·75)씨는 지금과 같은 노년을 아직 받아들이기 힘들다. 홀몸으로 한복 바느질을 하며 애지중지 키워온 두 아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했기 때문이다.

건장하게 자라 방송국에 취직한 큰 아들에게 그는 집과 의상실을 처분해 아파트를 구입해줬고 며느리에겐 사업자금을 보태줬다. 하지만 며느리의 외도 이후 사이가 나빠진 큰 아들 부부의 무관심과 폭력으로 A씨는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작은 아들에겐 기꺼이 명의를 빌려주고 손자까지 키워줬건만 아들은 천륜을 끊었다. A씨는 결국 자신의 처지를 알면서도 3년간 연락을 끊은 큰 아들을 상대로 부양료청구 소송을 냈다. 지난 1일 법원은 큰 아들에게 어머니가 사망할 때까지 매월 4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전통사회의 미덕으로 여겨지던 ‘부모 공양’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면서 이 사례처럼 자녀들과의 천륜을 끊고 부양료를 위해 법정에 서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이는 현재 노인 세대들과 달리 개인주의적 성향을 가진 자녀세대들이 노부모에 대한 부양을 결코 자신들만의 책임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인 B(76)씨는 육군중령으로 넉넉한 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에게 지난 2009년부터 부양료를 요구해왔지만 아들은 1년에 2~3번 5만원을 보내준 게 전부였다. 아무 재산도 없이 고령으로 일자리조차 구하기 어려웠던 B씨는 법원에 아들을 상대로 부양료청구 소송을 냈다.

지난 7일 법원의 조정결정으로 아들은 아버지가 사망할 때까지 월 20만원씩을 지급하기로 했다.

박효종(윤리교육) 서울대 교수는 “부모에 대한 자식의 부양은 교육을 통해 도덕적, 윤리적 규범으로 당연시되었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점차 퇴색하고 있다”며 “부양료 문제가 법적 다툼까지 가는 세태는 씁쓸한 고령사회의 단면이지만 이젠 더 이상 가족 간의 의무나 효사상 강조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현택수(사회학) 고려대 교수 또한 “젊은 시절의 소득을 부모 및 자녀 부양에 사용한 현 노인 세대들은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고 있지만 가족 부양심리는 무너지고 있다”며 “이 문제는 노인빈곤과 자살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복지차원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정아·박정경기자 jayo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