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이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 새로 조성된 운정그린캠퍼스 본관 집무실에서 대학의 비전을 밝히고 있다. 김연수기자 nyskim@munhwa.com

반고흐의 그림도 없고, 칸딘스키의 추상화도 없었다. 로댕의 조각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교수들과 미대 출신 동문들의 모교 사랑이 담긴 작품들이 줄지어 있었다. 역동적인 곡선 모양의 붓 터치가 돋보이는 인물화와 사실적인 풍경화, 혹은 기하학적인 구도의 설치작품도 눈길을 끈다.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한 감동이 자리 잡은 곳, 성신여대 제2캠퍼스인 운정그린캠퍼스 본관 복도를 따라 설계된 갤러리다. 1층부터 7층까지 천천히 복도를 걸으면서 심호흡을 하자 성신의 에스프리가 느껴졌다.

“제2 캠퍼스의 콘셉트를 ‘문화’와 ‘건강복지’로 잡았어요. 본관 전층을 관통하는 아트 갤러리가 2개예요. 하나는 스퀘어, 하나는 라운드. 전시회도 겸하고요.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죠.”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은 학생들을 ‘아이들’이라고 불렀다. “아이들이 걸으면서 행복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지난 3월31일 오후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 새로 조성된 운정그린캠퍼스에서 만난 심 총장은 자신이 공들여 지은 교정과 교사를 직접 안내하면서 빠른 설명을 이어갔다. 완공된 캠퍼스의 아름다운 자태가 믿기지 않는 듯 심 총장은 설레기까지 했다. “성신의 미대 역사가 45년이나 됐습니다. 교수님들이 여간해선 그러기 힘든데 쾌히 기부를 해줬습니다.일부는 박물관에서 가져온 것도 있고, 동문들이 기부한 작품도 많아요. 좋은 작품들을 많이 보내주셨어요.”

층간 이동을 하면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학생들이 오가면서 문화 접촉을 할 수 있는 공간은 ‘성신 구겐하임’뿐만이 아니었다. 대강당은 오케스트라 연주가 가능하도록 꾸며졌고 중강당은 뮤지컬과 교수들의 리사이틀을 위한 체임버 스타일로 만들어졌다. 5층은 하늘정원이 있어 아이들의 쉴 공간이 되기에 족했다. 교수실의 벽과 창은 모두 통유리로 만들어져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소통과 융합을 상징하는 것이다. 막힘없이 서로 통해야 한다는 총장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리라.

“초반에는 교수들이 불편하다는 원성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좋다고들 합니다.”

심 총장에 따르면 캠퍼스 설계자는 김석철 교수. 예술의전당의 ‘곡선의 미학’을 설계한 이다. 교색인 초록색을 느낄 수 있도록 7층 식당에 올라가면 캠퍼스 주변을 둘러싼 도봉, 북한, 수락, 불암 등 4대 명산의 풍경을 모두 만끽할 수 있다. 이제 봄이 절정에 이르면 성신은 벚꽃과 목련으로 병풍을 두르게 될 것이다.

―서울에 캠퍼스를 둔 대학이 또다시 서울에 제2캠퍼스를 만든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철저히 친환경적이고 학생중심적으로 지었습니다. 녹지공간이 전체 면적의 40%가 넘어요. 건물의 냉난방은 지열(地熱)시스템을 이용합니다. 건물 자재도 모두 친환경 소재를 썼구요. 첨단과 환경이 만나 미래를 준비하는 글로벌 에코 캠퍼스라고 확신합니다.”

심 총장에 따르면 운정그린캠퍼스는 전체 부지 5만4400㎡에 지하 3층, 지상 7층 규모의 단과대 건물 3개동, 부속건물인 파빌리온 1개동으로 구성된다. 전체 학부생 1만여명 가운데 융합문화예술대, 생활과학대, 간호대, 자연과학대 소속 3000여명이 이 캠퍼스로 왔다. “서울에 있는 대학 가운데 학생 1인당 가용면적이 가장 넓은 캠퍼스입니다. 캠퍼스 공간의 요소요소를 최대한 활용해 합리적인 동선과 공간을 제공했구요, 지상에는 주차장 대신 조경시설을 꾸몄습니다. 지역민들을 위한 문화시설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심 총장의 자랑이 이어졌다.

성신은 올해 개교 75주년을 맞았다. 미래를 준비하는 친환경 글로벌 캠퍼스를 기반으로 ‘제2 창학’을 선언하겠다는 다짐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심 총장은 오는 12일 오후 운정그린캠퍼스 준공헌정식을 한다. 이날부터 16일까지 캠퍼스 곳곳에서는 준공헌정을 기념하는 축제가 열린다.

―한때 남녀공학이 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추진 계획이 있습니까.

“잘못 알려진 겁니다. 남녀공학이 아니라 교명을 성신여대에서 ‘성신대학’으로 바꾸는 것을 추진했던 겁니다. 남녀공학이 되려면 그에 버금가는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뚜렷한 명분이 없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난 여대이기 때문에 성신에 왔다’고 해요.”

―성신의 창학 이념을 말씀해주시죠.

“1936년 설립할 당시만 해도 여성들의 배움이 약했던 시절입니다. 설립자께서 민족지도자를 양성하고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겠다는 일념으로 학교를 설립했어요. 성실함(誠)과 믿음(信)은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총장님의 교육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어떻습니까.

“한마디로 ‘통합적 사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사회에 나가서 무엇을 하든 남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타인과 함께 어떻게 할 것인가를 늘 고민하고 여럿이 더불어 사는 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됐으면 좋겠어요.”

심 총장은 인터뷰 내내 ‘융합시대의 덕목’을 강조했다. 이는 그의 교육철학은 교과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융합문화예술대학의 총 이수학점이 140학점인데, 이중 30학점은 전공과 관계없이 교차 수강하도록 한 것도 이런 철학을 반영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경쟁사회에서 ‘지표경영’적 성과를 외면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물론 지표관리도 중요합니다. 성신도 그걸 가볍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학생들의 취업관리는 1학년 때부터 학교가 전문가 진로상담을 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건강복지나 문화분야의 특성화를 통해 사회에 쓰임받는 교육인재를 길러내는 일도 하고 있구요. 졸업인증제나 영어능력인증제를 도입해 학사지도를 과거보다 한층 더 강화했습니다.”

하지만 심 총장은 “더 중요한 건 사회에 나갔을 때 ‘성신 출신은 다르다’란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사회에서 ‘성신여대 출신들이 정말 인격적이다, 따뜻하다, 올바르다’ 이런 평가를 받도록 타인을 배려하는 인물로 키우는 게 우선입니다.”

낭만과 열정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이는 심 총장에게도 인생의 굴곡과 역경이 적지 않았다. 나이 30세에 할아버지를, 다음해인 31세에는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집안 어른들이 계속 돌아가셔서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되던 상황이었습니다. ‘나를 크게 되게 하시려고 그러나 보다…하느님은 내가 이길 수 있는 고통만 주신다’는 생각으로 견뎌냈습니다. ‘지금은 고통스럽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잘 될 거다, 난 이겨낼 수 있다’는 긍정적 마인드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아들이 둘인데, 성신여대 나온 며느리를 얻고 싶습니까.

“당연하죠. 우리 애들 정말 좋아요.”

―성신의 학생들에게 점수를 준다면.

“물론 100점이죠.”

심 총장의 ‘아이들 우선’ 생각은 철두철미했다. “교수들이 여차하면 아이들보다 자기가 먼저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러면 안 돼요. 학생이 먼저예요. 학생이 잘되면 학교가 잘되는 거구요, 그건 결국 모두에게 좋은 겁니다. ‘학생이 먼저’라는 공식이 가장 중요합니다.”

인터뷰 = 허민 사회부장 minsk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