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댈러스행 비행기 안, 후배 승무원이 급하게 나를 찾는다. 승객 한 분의 건강상태가 안 좋은 것 같으니 살펴봐 달라는 요청이다. 비행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신입이라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담당 승무원이 보고한 승객을 찾아가 사무장임을 밝히고 불편한 곳은 어디인지, 현재 몸 상태는 어떤지 물었다. 그 승객은 평소 고혈압 증상으로 약을 복용하는데 그날은 약을 가방에 넣어 위탁 수하물로 부쳐버렸다고 했다. 주변 승무원에게 기내 의사 호출 방송을 실시하라 일러두고 또 다른 승무원에게는 혈압계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동안 나는 환자 옆을 지키며 안정감을 주기 위해 승객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승객은 올해 66세로 충북 제천에서 올라온 분이었다. 나도 충청도 출신이고 또 내 어머니 연배랑 비슷해 사투리로 “반가워유. 저두 천안 출신인데 같은 충청도 분이시네요. 우리 어머니랑 연세도 비슷하시고요. 제가 잘 간호해 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괜찮으실거예유”라고 말씀드렸더니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승객 중 의사나 간호사가 탑승하면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있어 기내 호출 등의 방법을 동원해 찾았으나 없는 듯했다. 이제는 승무원이 의사 역할을 해야 한다. 상태를 보니 응급 상황은 아닌 듯했고 낯선 장거리 비행을 앞두고 평소 복용하는 약이 없어 걱정이 앞섰던 모양이다. 주변 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승객을 좌석에 눕혀 드렸다. 혈압계로 혈압을 측정해보니 180~120 정도 나왔다.

기내 위성전화를 이용하여 회사 항공보건의료원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의사에게 환자 상태를 보고한 뒤 기내에서 사용 가능한 의약품을 문의했다. 다행히 기내에 고혈압 환자를 위한 약품이 준비되어 있었다. 의사가 알려준 약을 승객께 드렸더니 한결 편안해진 기색이다. 약을 먹은 뒤 잠을 청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몇 시간 뒤, 잠에서 깬 승객의 혈압을 다시 재보니 최고치가 150 이하로 떨어져 있었다. 승객도 몸 상태가 한결 가벼워졌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어 담당 승무원과 수시로 승객 상태를 확인했다. 그렇게 12시간을 날아 무사히 댈러스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 후 작별 인사를 하는데 승객이 내 손을 꼭 쥐고는 너무 고맙다고, 평생 잊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고는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며 내 손에 만 원짜리 두 장을 꼭 쥐여주신다. 돈도 돈이지만 돈을 건네는 승객의 손 주름에 코끝이 찡해졌다. 극구 사양하시는 것을 “어머니, 댈러스까지 건강하게 와주셔서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지요. 다음에는 기내에 꼭 혈압약 가지고 타세요”라고 말하며 힘들게 되돌려 드렸다. 비행기에서 참 많은 인연을 만난다. 이번 댈러스행 비행기에서 나는 또 한 분의 어머니를 만났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날까지 좋은 사람들과 이렇게 좋은 인연을 맺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