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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나 선비족뿐만 아니라 양진(兩晋)에서 위진남북조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무덤에서 금동신발이 출토되는 경우는 없다. 금동신발의 하부에 금속 못을 박은 것은 고구려, 백제, 신라, 왜의 유적에서만 출토되며 그 기원지는 고구려일 가능성이 높다.”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등이 고대국가 체제를 완비해 나가던 5세기부터 6세기 전반에 이르는 150년 동안 지배층의 배타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상징하는 위세품(威勢品)으로 기능했던 금동신발을 비롯, 금관과 금동관모, 금제귀걸이, 팔찌, 허리띠 장식(帶金具·대금구) 등 각종 금속장신구 유물을 개괄하고 역사적 의미를 고찰한 연구서가 나왔다.

신라금관을 중심으로 고대 장신구 유물을 천착해온 이한상(역사문화학) 대전대 교수는 최근 ‘동아시아 고대 금속제 장신구문화’(고고)를 출간했다.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등 한국사의 범주에 속하는 네 나라의 장신구문화를 주로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목에 ‘동아시아’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당시 금속제 장신구문화가 중국의 여러 왕조와 일본열도의 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분포하며 상호 밀접하게 교류했기 때문이다.

중국 동진(東晋)시기 선비족이 세운 전연(前燕)·후연(後燕)·북연(北燕) 등 삼연(三燕)과 한반도를 거쳐 일본열도에까지 전파돼 유행한 진식대금구(晋式帶金具)문화와 고구려·백제·신라·가야의 장신구문화를 살펴본 저자는 고구려 장신구에서 중국이나 선비족 문화와는 다른 우리만의 특징을 발견하고 있다. 출토 사례가 많지는 않지만 고구려의 조우형금동관식(鳥羽形金銅冠式)과 중국 지안(集安) 마셴거우(麻線溝) 1호묘 출토 굵은고리귀걸이(태환이식·太環耳飾), 금동신발 등에서 중국이나 선비족 문화에는 없는 우리 장신구문화의 독자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 교수는 “고구려의 금속제 장신구문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중요하지만 정치·문화적으로 밀접한 교류관계에 놓여 있던 신라와 백제에도 큰 영향을 미쳐 삼국 전체에 ‘황금문화(黃金文化)’가 크게 유행하는 데 기폭제 역할을 수행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고구려 조우형금동관식과 마셴거우 1호묘 출토 굵은고리귀걸이는 각각 신라 황남대총 남·북분에서 출토된 금제관식 및 귀걸이와 거의 흡사하다. 경주 금관총과 천마총에서도 조우형금제관식이 출토됐다. 대부분 크기가 너무 크고 약하게 만들어져 장례용품일 가능성이 큰 금동신발도 고구려와 신라 출토품은 유사한 측면이 많다. 이를 통해 4세기 후반 처음 등장한 뒤 5세기부터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을 중심으로 약 150년간 지속된 신라 황금문화의 전성기에 고구려가 미친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지금까지 15점이나 발굴된 백제 금동신발은 고구려·신라 출토품과는 제작기법이 아주 다르다. 신라보다 이른 시기에 제작됐으며 고구려의 것과는 형태가 완전하게 달라 현재로서는 기원을 단정하기 어렵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백제 금동신발은 오히려 에다후나야마(江田船山)고분 등 6세기 대 일본열도에서 출토되는 금동신발과 유사하다. 이 교수는 “백제의 금속제 장신구문화는 비단 백제 국내에만 한정되지 않았고 정치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대가야와 왜로 전파돼 동북아시아에서 중요한 유행의 출발점으로 기능했다”고 덧붙였다.

황금문화가 도입된 지 약 1세기가 지나는 시점에 절정에 달했던 신라의 황금문화는 6세기 무렵 신라인들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등 신라사회가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면서 쇠퇴하게 된다. 장신구 사여를 통한 신라의 지방통제와 가야 왕권의 향배, 5~6세기 대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교류 관계 등을 고찰한 이 교수는 “당시 위세품이자 장례용품으로 기능했던 금속제 장신구를 통해 삼국시대 고분문화의 특징과 한국사의 범위를 추구해 본 점에서 이번 작업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