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고려 현종2년인 1011년에 만들어진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 조판된 지 꼭 1000년 되는 해를 맞아 대장경의 속살을 말끔히 벗긴 책이 출간됐다.

오윤희 전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이 펴낸 ‘대장경, 천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불광출판사)이 화제의 책으로, 고려대장경에 얽힌 오해를 털고 고려대장경에 숨어 있는 진실과 참가치를 좇아가는 ‘역사 바로보기’의 의미로 와닿는다. 오 전 소장은 “고려대장경은 짝퉁이다”며 “단 하나의 오자도 없다, 마치 한 사람이 쓴 듯 글자가 정연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이다는 주장은 모두 가짜”라고 밝혔다.

오 전 소장에 따르면 초조대장경은 송나라의 개보대장경을 엎어놓고 베낀 것이고, 재조(再雕)대장경(해인사 팔만대장경)은 또 초조대장경을 놓고 베낀 것으로 알려진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나 “전설이나 신앙이 역사적 진실을 뒤덮었다고 고려대장경의 역사적·문화적·기술적 의의가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며 “고려대장경이 갖고 있는 우수성은 바로 기록으로 전한 ‘교정(矯正)이야기’로,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는 가장 극적인 장면을 대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재조대장경에만 유독 교정의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재조대장경이 저본(底本·원본)으로 사용한 북송본·국전본·국후본·거란본 등이 2만5000권, 여기에 수종의 필사본, 주석서 등 여러 판본들을 일일이 대조해야 했는데 13세기 강화도에서, 그것도 전쟁통에 5만2000자, 1500여종의 새까만 한문본을 교정하는 데 16년이나 걸렸다.

“대장경이 1000년 뒤에 만들어진다면 ‘성경’이 들어갈지도 모르겠다”는 저자의 주장도 흥미롭다. 불교의 경률론(經律論) 삼장(三藏)을 담은 그릇이다. 대장경에 포함된 1500여종의 책 중 삼장에 속하지 않은 문헌만 100여종이나 된다. 다른 종교의 성전이 포함된 경우도 있는데, 불교 입장에서는 ‘외도’에 해당되는 문헌인 인도 육파철학의 하나인 수론종(數論宗), 상키야 학파 문헌인 ‘금칠십론(金七十論)’과 더불어 역시 육파철학의 하나인 승론종(勝論宗), 바이세시카 학파의 문헌인 ‘승종십구의론(勝宗十句義論)’이 그것이다. 두 문헌 모두 왕 앞에서 논쟁이 진행되는 것을 적은 것인데, 불교는 이 논쟁에서 철저히 패배한 문헌이 대장경에 입장(入藏)돼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대장경은 부처의 말씀과 가르침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1000년의 세월 동안 진행된 동아시아 지식의 흐름들이 꽤 많이 녹아들어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대정신수대장경(1912~1925)에는 중국 당나라 때 장안으로 들어와 정착한 기독교 일파인 네스토리우스파의 경교(景敎)의 문헌 3종(성서)이 포함돼 있다. 7세기 기독교의 성경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저자는 “대장경의 역사가 발전해 미래에 대장경을 새로 조성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면 미래의 대장경 안에는 기독교의 신약성서, 이슬람의 코란은 물론이고 종교간 대화나 논전에 대한 기억들이 포함될 것이 틀림없다”고 말한다.

정충신기자 csju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