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료부터 완성품까지… 쇠못 하나도 ‘전통대로’

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9일 야장 이은철씨가 상형로에 철광석과 숯, 석회 등을 집어넣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7시 경기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사적 제382호 고달사지 인근에 위치한 고대제철도검장 이은철(54)씨의 집이자 대장간 옆 작업장에서 상자모양의 우리 전통 용광로인 장방형의 대형 상형로(箱型爐)가 불을 뿜었다.

국보 제1호 숭례문 복원에 쓰일 쇠못 등의 철물을 만드는 데 사용될 소재(괴련강)를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기 위해 실시된 제철작업에서 야장(冶匠·대장장이) 이씨 등은 상형로가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철광석과 숯, 석회 등을 위에서 쏟아넣었다. 길이 2.5m, 폭 1.2m, 높이 2.4m인 상형로 아래쪽 좌우에 3개씩 구멍을 뚫고 박아 놓은 대구경 송풍관을 통해 바람을 불어넣자 용광로의 온도가 1430도, 1490도, 1530도로 치솟았다. 송풍구와 슬래그를 뽑아내기 위해 뚫어 놓은 구멍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가리키는 밖의 날씨와 묘한 대조를 이뤘다. 18일 오전 7시 상형로 예열로 시작된 제철작업은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20일 오후 10시30분까지 이어졌다. 이틀 반 동안 진행된 제철작업에 철광석 4.5t과 숯 10t, 석회 1.5t 정도가 투입됐다.

1주일 뒤인 26일 오전 11시 이씨의 작업장에서 마침내 상형로 해체작업이 시작됐다. 나흘 동안 용광로가 식기를 기다려 이날 큰 망치와 드릴 등을 동원해 황토벽돌로 축조된 상형로를 부수고 슬래그를 제거하자 용광로 밑바닥에서 괴련철(잡쇠)에 탄소가 섞인 철 덩어리(괴련강)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대제철 전문가이자 한국철문화연구회장인 이남규(국사학) 한신대 교수는 “괴련철뿐만 아니라 일부에서 선철과 연철, 해면철 등 다양한 종류의 철이 확인되고 있다”며 “지금까지 소규모가 아닌 대형 상형로 제철작업은 처음 시도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이씨를 비롯, 8명의 인력이 투입돼 이날 오후 5시30분까지 작업이 진행됐지만 상형로 해체를 끝내지 못했다. 해체작업 도중 이씨가 괴련강의 일부를 떼어내 대장간 화덕(정련로)에서 두손망치(큰메)를 사용한 제강(단련) 및 성형작업을 통해 전통 건축에 사용되는 쇠못을 만들어냈다. 앞으로 작업이 본격화하면 이씨의 대장간에서 최소 하루 10㎏ 정도의 철물을 생산해야 한다.

숭례문이 방화로 소실된 지 3년째가 되는 오는 2월10일을 계기로 복원작업이 본격화함에 따라 목구조물인 문루에 들어갈 숭례문 복원 철물 제조사업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숭례문 복원사업에는 12~51㎝ 길이의 다양한 쇠못 660.5㎏과 문고리·띠철 등의 장식 철물을 포함해 1t 정도의 전통 철물이 소요될 예정이다. 이씨가 책임을 맡은 이번 사업의 특징은 철광석과 숯 등 원료뿐만 아니라 제철 등 작업 일체를 전통 방식에 따라 진행하는 것. 이번 제철작업에 사용된 철광석은 경남 양산시 물금레미콘에서 기증받은 김해 상동광산의 철광석이며 상형로는 충북 진천 석장리 유적에서 유구(遺構·옛 건축물의 흔적)가 확인돼 실체가 드러난 백제시대 초기부터 사용된 우리 고유의 용광로다. 포스코에서 사용하고 있는 쇳물을 뽑아내는 고로와 달리, 반쯤 용해된 상태인 철 덩어리를 만들어내는 상형로 작업은 곧바로 대장간에서 사용 가능한 강철을 제조하는 데 편리해 직접제강 또는 직접제철 방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원시적이고 숯 등 연료가 많이 들어가며 해체할 때 힘이 많이 드는 것이 단점이어서 칼을 만드는 소재를 생산하는 소형 작업에 유리하다.

이씨는 “고로 위주의 간접제철 방식을 선호한 중국이나 상형로 중심의 직접제철을 선호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전통적으로 두 가지 방식을 혼용해 왔다”며 “이번 사업에 바람직한 모델을 선정해 예정된 기한 안에 숭례문 복원에 사용될 전통철물을 제작하는 데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주 = 글·사진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26일 철을 꺼내기 위한 상형로 해체작업 결과 슬래그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괴련철 덩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