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고대사에서 사실 여부를 떠나 일반인들의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학설 중의 하나가 아마도 기마민족설(또는 이론)일 겁니다. 신라사에서 ‘마립간(麻立干)’이 통치한 5~6세기에 출현한 대형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과 이곳에서 출토된 금관 등 각종 황금 유물들의 기원을 중앙아시아에 살던 북방 기마민족의 도래에서 찾는 견해도 바로 그 중의 하나이지요.

사실 신라왕족 김씨가 흉노족 태자였던 김일제의 후손이라는 금석문 기록이나 흑해 연안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 계림로 14호묘 출토 황금보검 등의 존재는 전후 맥락을 배제하면 기마민족설을 그럴 듯하게 보이게 합니다. 고고학계 일각에서도 신라 돌무지덧널무덤과 금관의 기원 등을 설명할 때 기마민족의 주인공인 스키타이족과 그 후계자인 사르마트족의 유적 및 유물과 연관시켜 거론하니까요. 하지만 기마민족설이 한·일 양국 학계에서 지지를 못 받는 것은 이 학설이 논리적·고고학적으로 검증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내 학계에서 거론되는 기마민족 이론은 일본의 고고학자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1906~2002)가 지난 1948년 처음 발표한 뒤 수정을 거친 ‘기마민족일본열도정복설’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았지요. 에가미에 따르면 한반도 남부로 이동해 온 기마민족의 주류는 변한(임나) 지역으로 가고 그 지파가 백제를 건국했습니다. 한편 기마민족의 주류는 4세기 전반 바다를 건너 북 규슈(九州)로 진출해 ‘왜·한 연합왕국’ 즉 ‘임나·쓰쿠시(築紫·지금의 후쿠오카·福岡)연합국’을 건설한 뒤 4세기 말~5세기 초 지금의 교토(京都)와 오사카(大阪) 일대인 기나이(畿內) 지역을 정복하고 야마토(大和) 조정을 수립했다고 설명하지요.

에가미는 바로 이 때문에 종가(宗家)인 야마토 조정이 임나에 지배권을 가졌고 분가(分家)인 백제에 대해 우월한 입장을 견지했다고 강변했습니다. 이를 통해 에가미의 학설이 결국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과 임나일본부설을 토대로 구축된 또다른 형태의 식민사관이란 것을 알 수 있지요.

강봉원(문화재학) 경주대 교수가 최근 ‘중앙아시아연구’(중앙아시아학회) 제15호에 돌무지덧널무덤 축조로 대표되는 신라의 문화변동에 중앙아시아 기마민족 이동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가설에 반론을 제기하는 글을 발표했습니다. 서기 4세기를 전후한 시점에 스키타이족과 사르마트족 모두 이미 역사의 무대에서 종말을 고한 지 오래이며 흉노족도 동쪽으로 이동했다는 역사·고고학적 증거는 없다고 역설하네요.

이처럼 역사적 사실로는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일반인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측면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학설이 기마민족설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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