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도발적 행동을 규탄하기 위한 미국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초청으로 6일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담이 열린 것이나, 마이크 멀린 미 합참의장이 긴급하게 한국으로 출발한 것 모두 미국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국무부 차원의 외교적 대응과 국방부 주도의 군사적 대응을 입체적으로 연결지으며 북한 행동에 대응하고 있다.

이날 개최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의 가장 큰 메시지는 3국 공조로 중국을 압박하는 데 있다. 공동성명은 “북한이 9·19 공동성명상 공약을 이행하도록 촉구하는 중국의 노력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중국이 제대로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북한의 호전적 행동이 확산되고 있다는 현실 인식이 전제돼있다.

3국 장관은 3국의 연대와 공동대처 등을 강조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무언의 시위를 벌인 셈이다. 또 아시아에서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아세안지역포럼(ARF)과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준비 노력을 강화키로 했다는 발표 역시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 중국이 계속 북한편을 든다면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 여타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해 중국고립 정책을 펴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그럼에도 3국은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일본 외무상은 “이번 회담이 한·미·일 3국 대(對) 여타 3국(중·러·북한)과의 대결이 되도록 하자는 게 아니라 5개국이 북한에 공동대응을 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하는 회담이지, 이들을 배제하자는 게 아님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한·미·일 3국이 중국을 압박하면서도 중국에 협력을 위한 명분을 주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번 회담에서는 연평도 포격 도발뿐 아니라 우라늄 농축 시설 등 북한의 잇따른 도발행위가 포괄적으로 논의됐다. 3국은 북한의 추가적 도발에 대해서도 3국 공조를 계속하기로 함에 따라 동북아에서 3국의 연대 및 공조활동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3국 외교장관 회담이 워싱턴에서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클린턴 장관이 이번 회담을 제안하고 주도한 것인 만큼 한반도에 대해 적극적인 개입정책을 펴려는 미국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멀린 합참의장을 한국에 급파한 데 이어 내주중 고위급 방문단의 파견 방침도 밝히는 등 미국은 굳건한 한미동맹과 3국간의 대북 공동대응을 과시하고 있다. 미국은 조만간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과 커트 캠벨 동아태담당 차관보를 중국으로 보내 대북 금융제재 문제를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무부 청사 8층 제퍼슨룸에서 열린 이날 회담에서 클린턴 장관은 “연평도 공격 희생자를 위해 묵념의 시간을 갖도록 하자”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 클린턴 장관은 “북한의 도발적 공격으로 동북아 지역에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시점에 회담이 열리는 것”이라며 묵념을 통한 대북 공동대응의 결의를 다졌다. 3명의 장관을 비롯, 회담 참석을 위해 배석한 3국의 당국자들은 일제히 머리를 숙이고 침묵 속에 17초가량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워싱턴 = 천영식특파원 kka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