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종욱 대우건설 사장은 지난 12일 “리비아 외교마찰과 이란 문제 등에도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동훈기자

건설업계의 2010년은 안팎으로 위기의 연속이다. 부동산 시장은 침체에서 헤어날 줄 모르고, 국내업체 해외수주의 80%를 차지하는 중동, 아프리카 건설시장은 외교마찰과 미국의 대이란 제재 문제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대우건설 18층 집무실에서 만난 서종욱 대우건설 대표이사 사장은 그동안 인터뷰 요청을 몇차례 사양했었다. 국내외 건설 위기도 위기려니와 대우건설의 산업은행 편입 등 아직 숙제가 남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날 인터뷰는 한국과 리비아의 외교마찰이 한창이던 지난 7일 대우건설이 리비아에서 대단히 의미있는 수주를 한 것이 계기가 됐다. 외교관 추방까지 간 심각한 외교마찰로 비자발급도 중단된 리비아에서 4억5000만달러(약 5200억원) 규모의 복합화력발전소(화전·火電) 수주라는 쾌거를 일군 것이다. 이 수주로 대우건설은 리비아에서만 19억5000만달러의 공사를 수행하게 됐다.

리비아사태 조기해결돼야 수주 활성화

서 사장은 인터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접견실의 큰 사진을 가리켰다. 제주도 남제주 쪽에서 태평양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인데 탁 트인 바다, 햇빛을 가리는 구름, 바닷가 바위 등이 묘하게 어우러졌다. 유명작가의 작품사진으로 기대하고 물었더니 직원이 찍은 것이란다.

“끝없는 바다와 구름, 기암괴석 등 천변만화를 보여주지 않습니까. 비 구름 속에 태양이라는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진이죠. 저 사진을 보면서 최근 발생한 한·리비아 외교마찰도 잘 해결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는 리비아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리비아는 1978년부터 대우건설의 주력시장이었지만 지난 7월 발생한 양국 간의 이해상충 문제로 수주 등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굉장히 염려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임직원들과 정부·정치권의 노력으로 화전 수주도 하고 외교마찰도 가라앉는 분위기여서 마음이 놓입니다.”

서 사장은 리비아, 중동에서만 7년 넘게 근무했다. 건설업계의 대표적인 ‘리비아 전문가’로 통한다. 그는 리비아가 정경분리 원칙을 비교적 잘 지키는 나라여서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양국 간에 굴곡과 상충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화전을 외교마찰 이후 계약해 큰 의미가 있지만 그게 곧 한·리비아 관계 정상화로 볼 수는 없습니다. 양국의 이해상충 여부에 따라서 마찰이 더 있을 수 있어요. 다만 이상득(한나라당 의원) 특사가 리비아에 가서 총리 및 관계자를 여섯 차례 만나는 등 헌신적인 공을 들여 더 악화되는 상황을 막고 해결의 실마리를 풀었다고 봅니다. 리비아에 진출해 있는 업체들도 최선의 노력은 다할 것이고, 정부 차원에서도 하루 빨리 현안 문제를 잘 해결했으면 합니다. 정말 간절히 기대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한발 앞선 세계경영으로 글로벌 경쟁력 갖춰

대우건설은 국내 어느 기업보다 앞서 글로벌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래서 해외시장에서 어느 업체보다 강한 경쟁력을 지녔다.

서 사장은 대우건설이 인재 우선과 실패나 시행착오의 경험도 버리지 않고 공유하는 시스템, 끊임없는 실용기술 개발 등으로 세계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업체는 인재가 제일 중요하거든요. 사람이 자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우건설을 두고 시중에서 인재사관학교라고 하지 않습니까. 저희는 사람을 뽑아서 근본적으로 자질 향상을 위한 교육을 많이 합니다. 여기에 수많은 성공과 실패 사례, 시행착오를 고민하는 공유시스템, 이런 게 대우건설은 잘 돼 있어요. 또 기술연구원도 별도로 제일 먼저 만들어서 실용 기술을 연구하고, 장기적 발전을 위한 기술개발도 한 것이죠. 대우건설 유전자(DNA)는 이런 것이 시스템, 조직력, 수행능력에 깔려 있어 위기에 강하다고 봐요.”

대우건설은 지난해 발생한 금호아시아나 그룹 유동성 위기 사태로 현재 산업은행으로 편입되기 직전이다. 오는 9월에 모든 절차가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대우건설이 리딩건설사로서의 국내외 실적, 우수인력확보 등 펀더멘털이 잘 구축돼 있어 산업은행 편입만 되면 재도약의 날개를 달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대우건설 인수합병(M&A)에 대한 불확실성 문제로 주가는 1만원 아래에 머물러 있다.

“해외 발주처를 가면 ‘너희들 주인없는 회사로 불안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경쟁업체들이 대우가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떠들고 다니겠지요. 국내서도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정으로 많은 소문이 돌았지요.”

그는 “늦어도 9월까지 산업은행 인수절차가 완료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또 산업은행이 대우건설을 명실상부한 한국의 리딩컴퍼니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든든하다고 덧붙였다.

“국내외 수주시장에서 파이낸싱을 동반한 수주전략이라든가 부족한 부분 보강, 엔지니어링에 대한 지원 등이 원활해지리라 봅니다. 산업은행과 대우건설이 시너지 효과를 많이 올릴 수 있어 그것을 통해 기업가치가 업그레이드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평사원에서 최고경영자(CEO)로…“내조 덕”

서 사장은 대우건설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해외 현장과 국내 주택 건축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사장까지 오른 인물이다.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겸손해하면서도 ‘매사 최선’을 강조했다.

“선친께서 항상 강조한 것이 ‘어느 순간이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당할 재간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 저의 좌우명이에요. 주변의 여건이나 환경을 탓하기 전에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면 반드시 성사된다고 믿습니다.”

가족은 국내에 남겨두고 홀로 해외현장 근무를 7년이나 하는 고생도 감수했다. 그것도 결혼한 지 몇해 되지 않은 때에 부모님과 아이를 아내에게 맡기고 해외현장에서 일에만 몰두했다. 그래서 지금도 일 때문에 가족과 함께할 수 없었던 시간이 늘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인터뷰 도중 그는 접견실에 설치된 오디오를 틀었다. 제일 많이 듣는 음악이라면서…. 바이올린 소리가 감미로운 곡은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작품 35번(concerto in D, Op.35)이었다. 젊은 시절 리비아에 있을 때 혼자 골방에서 수없이 듣던 음악이라고 했다.

“일의 연속으로 젊은 시절을 보냈죠. 가족은 전부 한국에 있고…. 어떤 의미에서 애들 성장에 아버지의 역할은 거의 없었어요. 손잡고 놀이시설 가보고 했던 기억이 없어요. 그 역할은 전부 아내의 몫이었죠. 당시 건강도 안 좋았는데 시부모님 모시랴, 아이들 키우랴 고생 많이 했습니다. 지금은 해외근무 시 4개월 만에 한 번씩 휴가를 받아 국내에 오지만 1970~1980년에는 1년에 한 번씩 휴가를 왔었어요. 한번은 아이가 아내에게 물었답니다. ‘웬 아저씨가 집에 와 있느냐’고….”

그는 집안 얘기가 나오자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내보였다. 곧게 자라준 딸과 아들에게도 늘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애들 교육, 집안 대소사, 다 집사람이 했어요. 난 뭐…. 그래서 인제 잘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빚으로 남고…, 요새도 일찍 나오고 늦게 들어가니 대화할 시간이 없어 미안할 뿐입니다.”

그래서 그는 휴일이면 되도록 아내와 영화를 보거나 성남 분당 탄천을 산책한다. 그에게는 독특한 습관도 있다. 하루 4~5시간 자는데 새벽 3시쯤에 깨어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나서 다시 잠자리에 들어 5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닌데 저절로 잠이 깬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고 그의 아내는 ‘몽유병 환자’라고 한단다.

“한밤중에 깨는 것은 체질적인 특징인 것 같아요. 새벽 그 시간만큼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없어요. TV도 없고, 아무도 나를 방해하는 사람도 없고 해서 생각도 잘 납니다. 왜 소설가들이 새벽에 글을 쓰는지 알겠어요. 부족한 잠은 차에서 10~15분 토막잠으로 보충하는데 엄청난 피로회복제가 됩니다. 모든 피곤이 싹 가십니다.”

부동산시장 거래 활성화로 숨통은 터야

서 사장은 주택영업 분양 등 주택건축 분야도 10여년 동안 맡아 부동산문제에 대해서도 전문가적 식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부동산시장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는 주택수요를 생각지 않고 아파트를 경쟁적으로 과다 공급한 점에 대해 건설업계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거래가 안 돼 어려움을 겪는 중산층들의 고통도 헤아려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시장이 이렇게 장기침체에 빠져있는 것은 업계도 상당한 고통이지만 국가경제 전체로 봐도 그렇습니다. 산업의 한 축이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런 입장에서 주택경기가 활성화는 아니더라도 정상적인 거래는 이뤄질 수 있도록, 그렇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지금 준공이 되어 입주를 해야 하는데 살던 집이 팔리지 않아 입주를 못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거든요.”

그는 한국 부동산시장은 일부에서 주장하는 일본의 부동산 폭락기나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당시 감정평가액의 120% 가까이 대출을 해줬고, 업무시설에까지 투기바람이 불었고,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는 신용 없는 사람에게 대출해줬다가 가격이 떨어진 데서 비롯됐지만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는 것. “우리나라는 총부채상환비율(DTI), 담보대출인정비율(LTV) 등으로 사전예방을 해 일본과 미국같은 사태가 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그는 “(부동산 등) 국내시장이 굳건히 받쳐줘야 해외로 나갈 수 있다”며 “안정적인 국내시장을 바탕으로 해야 세계적인 건설사로 클 수 있는 만큼 국내를 죽여 놓으면 국가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의 의지를 시장에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규제 및 다주택자 거래세 완화 등에 대해 정부의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 사장은 “정부의 거래활성화 대책이 하반기(7~12월) 중 발표된다는 가정을 해도 부동산 경기는 내년 상반기(1~6월)에나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뷰 = 김순환 경제산업부 차장 so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