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충북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 모라내마을 최고령자인 최동녀 할머니가 20일 정부 지원을 받아 마을에서 공동으로 키우는 소들에게 풀을 먹이고 있다. 충주=심만수기자

“참, 잘~생겼지?”

모시옷을 곱게 차려입은 백발의 할머니가 마른풀을 우리 안으로 내민다. 순간 큰 눈을 껌벅이던 소가 긴 혀를 쑥 내밀어 풀을 가로챈다. 할머니는 “얘들 이름이 장수마을소”라면서 “노인들이 힘을 모아 20마리를 키우고 있어 붙여진 명칭”이라고 설명했다.

소에게 여물을 주던 할머니는 충북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 모라내마을 최고령자인 최동녀(90) 할머니다. 장수마을 소 사육장은 최 할머니가 평소 즐겨 찾는 산책 장소 가운데 하나. 최 할머니는 “소들의 순한 눈망울을 들여다보면 절로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했다.

최 할머니는 허벅지까지 자라오른 벼들이 초록 물결을 이루는 논둑길을 걷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최 할머니는 기자를 만난 지난 20일 오전에도 모래내 천과 마을 뒤편 연못으로 이어지는 4㎞의 산책로 산보를 빼놓지 않았다.

산책로 주변에는 주민들이 마을 특산물로 삼으려는 뽕나무가 곳곳에 심어져 있었다. 뽕나무에는 짙은 보라색으로 물든 오디 열매가 점점이 매달려 있다. 수확철을 1, 2개월 앞둔 오디를 보자 입속에 침이 고였다.

최 할머니는 노인회관을 자주 찾는다. 노인회 회원들 모두 열 살 이상 어리지만 이제는 친구나 마찬가지 사이다.

최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들과 이런저런 얘기꽃을 피우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때마침 점심상에 돼지고기와 각종 야채를 넣어 고추장에 볶은 특식이 올라왔다. 노인회 막내뻘인 안월자(68) 할머니가 어디에선가 소주 한 병을 꺼내 왔다.

최 할머니의 주량이 궁금했다. 최 할머니는 농담조로 “한 되는 마셔야지”라면서 활짝 웃는다. 최 할머니는 “하루에 소주 한 잔 정도 마시는데, 속이 시원해지는 게 보약이 따로 없다”고 말했다. 소주잔을 사이에 두고 모여 앉은 할머니들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할머니들의 화제가 최 할머니 머리카락으로 옮겨갔다. 유승형(71) 할머니가 “어머, 언니 앞이마에 까만 머리가 나오네”라고 말하자 시선이 일제히 최 할머니에게 쏠렸다. 신기하게도 새하얀 머리카락 사이로 듬성듬성 검은 머리카락이 내비쳤다. 최 할머니도 “머리가 하얗게 셌는데 요즘 들어 검은 머리카락이 조금씩 나온다”며 신기해했다.

최 할머니는 3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지금은 큰아들 내외와 살고 있다. 19세에 세 살 연상인 남편과 결혼했다. 두 사람이 거의 70년을 해로했다.

돌아보면 큰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6·25전쟁 때는 공무원인 남편이 인민군에게 끌려가 시체로 돌아올 뻔한 적도 있었다. 호송 도중 남편은 수갑을 풀고 하얀 셔츠와 속옷을 모두 벗어던진 채 어둠을 틈타 도망쳤다고 한다. 애를 들쳐 업고 남편 주검이라도 찾아볼 생각으로 발을 동동 굴렀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천지가 송장이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일까. 남편과는 각별히 애틋한 사이였다. 두 사람이 한번도 싸운 적이 없었을 정도다. 남편도 아내를 속썩인 적이 없고 술에 취해 사고를 친 적도 없었다. 허약한 아내의 건강을 걱정해 하루가 멀다 하고 한약과 보양음식을 사 날랐다. 최 할머니는 “남편이 곁에서 건강을 챙겨준 덕분에 지금껏 살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안 계셔 서운하실 것 같아 위로의 말을 건넸다. 최 할머니는 “웬걸. 남편보다 내가 먼저 저세상으로 갈까 봐 걱정했어. 남자 혼자 살면 고생이 많잖아. 다행이지 뭐야.” 남편을 생각하는 최 할머니의 깊은 배려심이 전해져 왔다.

최 할머니는 음식을 싱겁게 먹는다. 짜고 매운 음식은 절대 입에 대지 않는다. 찌개는 된장찌개를 즐긴다. 배와 사과 등 과일도 거르지 않고 먹는다. 하지만 절대로 과식을 하지는 않는다. 오후 9시쯤 잠자리에 들어 오전 7시쯤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충주 = 이관범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