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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철학을 인터뷰하다 / ‘하버드 철학 리뷰’ 편집부 엮음, 강유원·최봉실 옮김 / 돌베개

“전 지구적 경제에 정치적으로 조직된 대응을 하려면 국민국가 그 자체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확장된 연대, 공동체, 정체성의 형태가 필요합니다. 동시에 이웃 간에, 학교에서, 노동조합에서, 사회적 운동과 같은 것들에서 정체성과 공동체의 보다 개별적 형태들을 떠받쳐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한국에서도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인터뷰에서 답한 말이다. 질문자는 ‘하버드 철학 리뷰’의 편집자들. 하버드대 학부생들이 자발적으로 창간한 철학잡지 ‘하버드 철학 리뷰’는 저명한 철학자들의 글이나 인터뷰뿐만 아니라 하버드 학생들의 소논문을 소개하는 등 수준 높은 학술활동을 펼쳐왔다.

이 책은 ‘하버드 철학 리뷰’를 모태로, 세계 철학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석학 14인과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하버드 철학 리뷰’의 학생 편집자들은 1991년에서 2001년에 이르는 기간에 이들 석학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에선 법이나 문화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뿐 아니라 논리학, 형이상학, 문학, 과학, 정치학에 이르기까지 철학적 문제의식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독자들은 재치 있는 학생들이 유명한 교수들을 괴롭히는 질문과 대화를 책에서 엿볼 수 있으며, 현대 사상의 흐름을 대화라는 형식을 통해 폭넓게 접할 수 있다.

책에선 마이클 샌델을 비롯, 이탈리아의 기호학자이자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 삶과 철학의 연관에 관한 지혜를 전개하는 코넬 웨스트, 대표적인 보수주의자이자 미 정치철학계의 거두인 하비 맨스필드, 미국에서 유럽 대륙철학의 가치를 천착하고 있는 헨리 앨리슨, 최근 사망한 실용주의 철학자 리처드 로티, 인터뷰 안 하기로 유명했던 존 롤스 등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법과 중세철학, 문학을 공부한 에코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텍스트를 해석하려는 시도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그는 “더 이상 기호학 이론에 대해 총체적으로 개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아울러 자신의 텍스트를 해석하려는 시도 또한 거부했다. 에코가 ‘장미의 이름’에서 밝혔듯이 “저자는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허구적인 글쓰기들을 수많은 수수께끼로 간주하고, 작품 각각은 독자들 수만큼의 잠재적 해법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통찰과 도덕적 통찰을 잘 조화시키는 것으로 유명한 코넬 웨스트는 철학이 실존적 난제들과 씨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족에 대한 뿌리 깊은 유대감, 기독교에 대한 강한 신념, 삶의 유약함과 도처에 편재하는 부정과 같은 문제들과 씨름해온 그는 철학이 종교와 예술에서 통찰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철학자들에 대한 전기로 잘 알려진 알렉산더 네하마스는 철학자들의 저작이 어떻게 삶과 연관돼 있는지를 밝히려 애써왔다. 특히 네하마스는 니체에 대해 주목했다. 그는 니체의 주요 저작들을 단편적인 방식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려고 시도하며, 니체의 철학과 삶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연구자로서 니체와 유사한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밝혔다.

또 현대 정치철학의 분기점으로 간주되는 저작 ‘정의론’의 저자 존 롤스는 현대 정치철학을 철학적 관심사의 중요 영역으로 복원시켰다. 인터뷰에서 그는 어떻게 자신이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군대 경험 등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또한 미국이 처해 있는 사회적 상황에 대한 판단과 학자로서 비판을 받을 때의 느낌이나 논쟁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보수주의 우파학자인 하비 맨스필드는 인터뷰에서 보수주의자라는 자신의 딱지에 대해 “일시적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주의에 관한 노골적인 질문과 레오 스트라우스에게 매료된 이유 등에 대한 사연은 자못 흥미롭다.

책에 나오는 석학들은 한결같이 보편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철학의 고전으로 돌아가라고 충고한다. 새로운 철학을 하려면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철학사에 대한 지식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학문에 임하는 태도는 왜 중요한가, 철학 교육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아가 결국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책은 끊임없이 질문과 답변을 되풀이하고 있다. 한마디로 책을 통해 세계 석학들이 말하는 철학과 삶의 문제, 그리고 공부에 관한 조언들을 들을 수 있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