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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태백의 김부래(69)씨. 그는 태백지역의 산악회 고문직을 줄줄이 꿰어차고 있으면서 대덕산·금대봉 자연생태경관보전지역 모니터요원이기도 하고, 숲해설가이자 산악전문가이기도 하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의 산행은 마치 ‘무장공비’를 연상케 한다. 텐트 하나에 소주병을 넣고 길 없는 산을 오른다. 태백 일대의 산이 좀 험준한가. 그중에서도 등산로가 없는 곳들만 골라서 간다. 백두대간 둘레길을 답사하느라 무려 스물 두시간을 걸었던 적도 있다. 그때는 밥도 걸어가면서 먹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가 그저 산만 오르는 것은 아니다. 산속의 야생화며 나무들을 마치 손금보듯이 꿰뚫고 있다. 그가 태백 일대의 야생화 가운데 이름을 대지 못하는 것이라면 ‘미기록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0년 넘게 태백 일대의 산을 다니면서 계절마다 불철주야 풀과 나무를 공부했다니 더 말해 무엇할까. 그가 야생화를‘안다’는 것은 그저 이름만 안다는 뜻이 아니다. 그 식물의 학명부터 약재로서의 쓰임새, 번식법, 깃드는 곤충이며 새까지 모르는 게 없다. 가령 이런 식이다. 이즈음 태백의 산간에서 꽃을 틔우는 야생화인 족도리풀을 놓고 그는 이 풀이 은단 원료로 쓰이는 한약재 ‘세신’이며, 그 잎 뒷면에 ‘이른봄애호랑나비’가 알을 낳는다고 설명한다.

“요 몇년 사이에 이른봄애호랑나비가 수가 크게 늘었어요. 중국산 약재의 수입 때문이지요. 중국산 세신이 무차별 수입되면서 약초꾼들은 아무리 캐봐야 이문이 남지 않는 족도리풀을 거들떠보지 않게 됐고, 그래서 나비도 늘어난 것이지요.”

그는 “중국에서의 약초수입으로 나비가 늘고, 그 나비를 먹이로 하는 새들까지도 늘어났다”며 “중국산 농산물 수입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며 웃었다.

군살 하나 없는 호리호리한 몸매에다 콧수염과 모자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꽁지 머리. 그에게서는 어쩐지 예술가의 풍모가 넘친다. 아니나다를까 그는 젊은 시절 강원도 일대에서 알아주던 밴드의 기타리스트였단다. 그전에는 강릉 KBS의 성우 일도 했다. 음악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기타리스트가 펑크를 내서 대신 기타를 잡았던 것이 계기가 돼서 나이트클럽 일을 하게 됐고, 1968년 탄광 경기가 좋았던 태백의 나이트클럽에 전속되면서 태백으로 건너오게 됐다.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산이 좋았어요. 건강을 챙기겠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산에 들면 마치 신선이 된 것처럼 마음이 깨끗해졌지요.”

그렇게 태백 일대의 산에 다니며 산나물과 약초를 캐기 시작했다. 가져와 봐야 놔뒀다가 상하거나 버리게 돼서 곧 심드렁해졌지만, 대신 야생화의 아름다움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알면 알수록 궁금증은 더 깊어졌다. 하루 2∼3시간만 자고 산으로 들거나 도감을 읽으며 생태공부에 푹 빠졌던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야생화를 보러왔다면 먼저 꽃에 관심을 줘야 합니다. 도회지에서 가져온 생각만 하다가는 꽃의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야 합니다.”

그는 꽃을 보러 태백을 찾는 이들에게 ‘천천히 걸으라’고 조언했다. 특히 “저절로 속도가 빨라지는 내리막길에서는 더 천천히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바삐 내려갈 때 꽃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바쁜 일상에서 작고 아름다운 것을 놓치곤 하는 삶과 닮았다”고 했다.

태백 =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