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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회화이론사 / 갈로 지음, 강관식 옮김 / 돌베개

“목 위를 그릴 때는 차라리 천천히 그릴지언정 빨리 그리지 않는 것이 낫다.”

전신(傳神·정신을 전하는 것)을 회화비평의 제일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던 중국 동진(東晉)시대의 걸출한 화가이자 이론가인 고개지(顧愷之·346 ~ 407)는 인물화에서 얼굴을 그릴 때는 신중하게 해야 하며 천천히 그리는 것은 괜찮지만 지나치게 빨리 그려서는 안된다고 역설했다.

특히 얼굴 가운데서도 눈동자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는 사람을 그리는 데 어떤 때는 몇년 동안이나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사지가 잘 생기고 못생긴 것은 본래 묘처(妙處)와 무관하니 정신을 전해 인물을 그리는 것은 바로 아도(阿堵·당시 방언으로 이것이라는 뜻인데 눈동자를 가리킨다) 가운데 있다”고 대답했다.

책은 중국 베이징(北京)대 철학과의 갈로(葛路·84) 교수가 중국미학사와 중국회화사에 대한 오랜 연구와 강의 결과를 토대로 펴낸 ‘중국고대회화이론발전사’(1982)를 완역한 것이다. 강관식(회화) 한성대 교수가 20여 년 전인 1989년 번역, 출간했으나 몇년 전 절판된 것을 이번에 다시 원전을 확인하고 번역문과 역주를 대폭 수정해 개정판을 내놨다.

사실 오늘날 화론(畵論)으로 통칭되는 화리(畵理)·화법(畵法)·화사(畵史)·화평(畵評) 등에 관한 중국 전통의 저술들은 그 양이 막대하다. 하지만 이런 화론들은 수많은 전적에 흩어져 있어 이를 찾아내기도 쉽지 않았다. 이 점에서 책은 역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깊이 있는 철학을 바탕으로 정리한 중국 화론 연구사상 최초의 통사로 의미가 크다.

회화이론과 회화창작이 변증법적으로 매개돼 상호 규정하며 끊임없이 발전해 나가는 것으로 파악하는 저자는 고대부터 청대까지 중국회화이론이 크게 세 단계를 거쳐 발전해 왔다고 본다.

첫 단계는 춘추시대에서 한대까지 제자(諸子)들이 그림에 대해 논한 시기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칠한 뒤에 한다’(회사후소·繪事後素)는 공자(孔子)의 이론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화론이다.

둘째 단계는 위진남북조에서 오대까지로 회화이론이 크게 발전하고 일대 전환을 이룬 시기다. 이 시기 화가로서 회화를 논한 최초의 인물인 고개지가 ‘전신’을 중심으로 하는 표현 문제를 언급했고 사혁(謝赫)이 전신론의 뒤를 이어 ‘육법(六法)’을 제시해 회화비평 기준의 체계가 확립됐다. 육법 중에 ‘기운생동(氣韻生動·그림의 정신적인 기질이 생생하게 약동함)’과 ‘골법용필(骨法用筆·오랫동안 단련해 습득한 붓을 쓰는 능력)’은 이후 중국화의 창작과 평가의 전범이 됐다.

셋째 단계는 송대에서 청대까지로 회화이론이 재차 크게 발전해 마지막으로 한차례 대전환을 이룬 시기다. 이중 청나라 초기 석도(石濤)의 화론은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역자는 저자가 미처 밝히지 못한 원전의 출처를 찾아 명시하는 등 이 책의 학술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원서에는 39점밖에 실리지 않은 참고도판도 대폭 확충해 146점을 실었다.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