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의 인연은 1951년 대구와 부산에서 미군 인턴으로 일하며 미국의 역할에 대한 리포트를 쓰며 시작됐어요. 요즘 한국은 그때 존재하지 않았던 모든 것을 갖고 있어 경이롭습니다.”

헨리 키신저(87) 전 미국 국무장관이 11일 아산정책연구원 특강에서 “나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진 사회만이 존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인들이 자국에 대한 큰 자부심을 갖고 이룬 성공은 그런 신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준다”며 한국과의 첫 인연을 이렇게 소개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이어 “한반도 분단은 우연이라고 볼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통일이 되면 세계무대에서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낙관적 전망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파워가 쇠퇴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과 관련, 키신저 전 장관은 “미국의 쇠퇴는 상대적인 것일 뿐 절대적인 측면에서 보면 세계는 여전히 미국파워시대”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대외정책에 반세기 이상 관여해온 키신저 전 장관은 “내가 젊었을 때 유럽은 중요한 외교파워였으나 오늘날 세계에서 유럽의 역할은 미미하다”면서 “미래를 위한 희생에 인색한 나라는 파워를 가질 수 없는데 요즘 유럽이 바로 그런 상태”라고 지적했다. 리처드 닉슨 및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 국가안보 보좌관(1969~74)과 국무장관(1973~77) 등으로 일해온 키신저 전 장관은 “현직에 있을 때 가장 큰 고민은 대통령이 모든 외교카드를 소진했을 때 무엇을 선택해야 하느냐는 점”이었다고 회고하면서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도 놀라지 않을 강심장”이라고 말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미·일관계에 대해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정부의 대미독자적 외교행보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면서 “오히려 지금까지 미·일양국이 완전히 일치된 정책을 펼쳐온 것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미국과 일본 간 관계가 재조정되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고 밝혀 미·일관계의 원심력이 강화될 것임을 시사했다.

글 = 이미숙기자 musel@munhwa.com
사진 = 김동훈기자 dh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