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사진=임정현기자

국립극단(예술감독 최치림)은 지난해 12월22~27일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최인훈씨의 희곡 ‘둥둥 낙랑 둥’을 초연했다. 이 작품은 국립극단의 국가브랜드 공연으로 올가을 서울에서 열릴 세계 시어터올림픽스에 참가할 예정이며, 6일부터 14일까지 같은 극장에서 다시 공연된다. 그러나 ‘국가브랜드 공연’이란 거창한 타이틀과 국립극단 작품이란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기대엔 크게 못미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5일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연출자인 최치림 감독을 만나 ‘공격적 질문’을 던졌다.

―영혼결혼식을 도입부에 끌어들였는데 사족(蛇足)이라는 느낌이 든다. 아름다운 비극적 사랑의 카타르시스를 꽉 틀어막고 시작하는 것 같다. 무당의 서투른 대사는 계몽극, 심하게 말해 학예회 느낌도 난다.

“처음 막을 올리고 2, 3일간 그랬다. 인정한다. 계획했던 영상이 사고가 나고, 무대 현실도 생각보다 열악했다. 작품의 효율적 전환을 위해 4개의 바통이 필요했는데 2개밖에 없었다. 배우들도 엉뚱한 짓을 했다. 내레이터도 시적으로 풀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과감하게 무당 장면을 줄였다. 설명적인 대사도 다 쳤고, 움직임도 단순화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원작자 최 선생도 처음에는 상당한 불만을 표했지만 지난해 마지막 공연에서는 만족감을 표했다.”

―2억원이 넘게 들어간 무대로 보기 힘들다. 더블 캐스팅도 선뜻 이해가 안 된다.

“어쩔 수 없다. 지난 ‘세자매’에서 정예로 공연했는데 또 한 팀으로 할 경우 많은 단원들이 한 작품에도 출연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무대에 서보지도 못한 채 평가에서 0점을 받게 된다. 국립극단 법인화가 진행 중인데 이 경우 경고에 감봉 등 심각한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 1월 공연이 끝난 뒤 시어터올림픽스까지 9개월 정도 시간이 남는다. 새롭게 드러나는 문제를 보완, 국가브랜드의 진면목을 보여주겠다.”

―장담했던 화려한 액션이 없다.

“나도 아쉬운 부분이다. 원작자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액션극으로 만든다고 심각하게 우려해 최소한으로 단순화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살로메’를 연상시키는 환상적인 에로티시즘, 잔혹성, 유미주의도 찾기 힘들다.

“그건 아니다. 잘 봐라. 호동과 낙랑의 사냥 장면이 바로 사랑의 절정이다. 두 사람은 전혀 모르는 숲 속으로 들어간다. 무서워한다. 그러나 더 머무르고 싶은 두려움이다. 호동은 모르겠지만 낙랑은 순결한 처녀다. 무서우면서도 설렘, 기다림이 있다. 모르는 곳으로 이동해 한 바퀴 돌고 의자들 사이로 빠져나와 작은 소(沼)를 건너는데 이것이 바로 순결한 사랑행위의 상징이다. 섹스를 양식적으로 풀어가야지 직설적으로 풀면 천해진다. 배우들의 눈빛과 몸짓으로 관능적 느낌을 전달해야 한다. 좀 더 관객들에게 분명하게 아름다운 사랑의 장면을 선사하기 위해 옷을 더욱 정교하게 벗기고, 호동과 낙랑의 체위 변화를 한번에서 두번으로 바꿨다. 작은 움직임으로 큰 의미를 줄 수 있게 많은 부분을 수정했다.”

―영혼결혼식으로 비극의 카타르시스가 훼손됐다는 숙제가 여전히 남는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작품의 주제는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된 2분법이 파괴된 세계다. 그 속에서 원초적인 사랑의 원형질을 그리고 있다. 나는 관객들이 죽음만을 갖고 극장을 나가게 할 수는 없다. 호동과 낙랑(사실은 낙랑의 쌍둥이 언니인 계모)이 죽은 뒤 광대가 공주의 치마에 호동의 모자를 쓰지 않는가. 한 많은 영혼들을 내세에라도 잘 살게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죽음의 극복이다. 내가 죽는다고 해도 두렵지 않은 것은 먼저 간 아내를 만난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한국인이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김승현기자 hyeon@munhwa.com

■‘둥둥 낙랑 둥’은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비극적 사랑이야기에 의붓어머니와 아들의 비련을 그린 그리스 비극 ‘페드라’를 교직한 듯한 작품으로 최인훈씨 특유의 시정과 압축적인 아름다운 문체가 백미다.

낙랑공주가 자명고를 찢음으로써 낙랑을 정복한 호동은 이로 인해 죽음을 당한 낙랑공주를 잊지 못하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한편 호동의 의붓어머니는 낙랑과 고구려의 평화를 위해 정략결혼한 낙랑공주의 쌍둥이 언니. 쌍둥이 언니는 동생에 대한 배신감과 조국을 멸망시킨 호동에 대한 미움으로 낙랑공주 행세를 하며 호동을 괴롭히려다가 오히려 사랑에 빠지고 만다.

호동은 낙랑공주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의붓어머니는 사랑으로 기꺼이 목숨을 내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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