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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속의 나르키소스는 너무나 아름다워 수많은 소녀들의 가슴을 불타게 했다. 소녀들 가운데는 남이 말하면 말하고 남이 말하지 않으면 말할 수 없는 요정 ‘에코’도 들어 있었다. 그 요정은 자기가 들은 말들 중 마지막 말만 되풀이할 수 있었다.

에코는 나르키소스가 들판을 헤매는 모습을 목격한 후 사랑으로 달아올라 언제나 그의 뒤를 좇아다녔다. 하지만 그녀는 아름다운 나르키소스에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어느 소녀에게도 그리고 사랑에 불타는 에코에게조차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 에코의 사랑은 마침내 고통이 되었고 고통으로 그녀는 야위어갔으며, 나중에는 결국 목소리(메아리)만 남게 됐다.

어느날 나르키소스는 맑은 연못을 들여다보다 연못에 비친 제 얼굴에 반해 사랑을 불태우게 됐다. 하지만 물 속의 상대는 결코 접촉을 허용치 않았다. 어느덧 나르키소스의 사랑은 고통이 됐고 고통은 그를 병들게 했다. 그의 육신은 서서히 소진돼갔다. 나르키소스가 자기 모습을 보며 “아아, 슬프다”고 하자, 주위를 맴돌던 에코 역시 “슬프다”라고 대꾸했다. 나르키소스가 죽어가면서 자기 모습을 향해 “잘 있어”라고 하자, 에코도 “잘 있어”라고 속삭였다….

김난도 서울대(소비자학) 교수가 최근 한 칼럼에서 한국사회의 젊은 소비자층을 ‘당당하고 자기애(自己愛)가 강한 세대’로 묘사하면서 이들을 ‘나르시스트 소비자’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이제 산업은 나르시스트 소비자의 욕망을 어떻게 충족시켜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하지만 현대 산업은 에코의 경우처럼 나르키소스를 좇으면서 눈물만 흘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김 교수는 간과하고 있다. 현대판 나르시스트 소비자는 지나치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나머지 나를 볼 때에도 결코 나 자체를 보려 하지 않는다. 남에게 비친 나를 보는 게 고작이다. 나 자체가 외부세계의 반영인 것이다.

현대판 에코는 이런 점을 숙지하고 있다. 다시말해 나르시스트 소비자들의 주관이라는 것이 외부 정보나 외부 평가에 의해 주어진 ‘사회적 주관’임을 알고 있어 오히려 이들 사회적 주관을 조작하려 든다. 정보·광고·유행하는 디자인·브랜드 등이 모두 사회적 주관의 형성 도구들이다. 현대판 에코는 옛날처럼 단순하지가 않다.

[[이신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