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온실가스를 건강에 대한 위협으로 공식 선언하고 온실가스 규제에 본격 나설 방침이다.

이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진일보한 정책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미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특히 이번 미 정부의 발표는 덴마크 코펜하겐 기후변화 정상회의에 모인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미국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 기후변화 어젠다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 환경보호청(EPA)은 7일 “온실가스가 미국인의 건강과 행복을 위협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면서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반드시 줄여야 하며, 의회가 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미 정부는 1970년 제정된 청정대기법(Clean Air Act)에 따라 이산화탄소 등 오염물질 규제에 나서기로 하고, 리사 잭슨 EPA청장이 6개 온실가스를 정부규제를 받는 오염물질로 규정하는 시행령에 서명했다. EPA는 청정대기법에 따라 온실가스 규제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며 온실가스 배출자료 수집을 위해 내년 1월 미국 전역에서 온실가스 다량 배출시설에 대한 등록을 시작할 예정이다.

하지만 청정대기법은 그동안 논란으로 사문화돼 왔고, 미 재계가 강력 반발하고 있는 데다 의회에서 다른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당장 효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미 정부의 이날 발표는 오히려 미 의회에 기후변화법안 통과를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 하원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기준으로 2020년까지 17% 감축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상원은 여전히 논란중에 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이 오는 18일 코펜하겐 정상회담 참석을 앞두고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유럽은 그동안 기후변화와 관련한 미 정부의 태도를 비난해왔고, 이번에도 말만 내세울 것이라고 의심해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유럽을 중심으로한 세계 각국의 반미 정서를 누를 수 있는 데다 국내에서 기후변화법안 통과를 위한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날 정부의 선언으로 미 환경단체들은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미 상공회의소와 공화당은 즉각 철회를 촉구하는 등 반발했다.

워싱턴 = 천영식특파원 kka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