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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모든 국가와 사회는 이상적 인간을 추구해왔다. 유교 문명권에서는 선비나 군자가 이상적 인간으로 받들어졌고 근대 유럽에서는 프랑스의 오네톰, 영국의 젠틀맨이 이상적 인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선비건 군자건, 오네톰이건 젠틀맨이건 이들의 공통점은 교양, 교양인이었다는 것이다.

동서고금 문화권에 따라, 시대에 따라 정확한 개념적 규정은 다르지만 교양인에 대한 욕구는 인간 사회의 존재적 본능처럼 계속돼오다 최근에는 교양 대유행의 시대에 들어섰다. 그렇다면 교양은 무엇이며, 교양인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교양인이라는 이름 앞에 떳떳한 자기 증명을 할 수 있겠는가. 가장 손쉽게 사전적 정의를 갖다댈 수 있지만 교양은 ‘경작(culture)’이라는 식의 사전적 정의는 역사 속에서 다양한 층위, 복합적 의미로 키워진 ‘교양인’이라는 광대한 영토의 문을 여는 문고리 정도에 불과하다.

평생 대학사와 지성사를 비롯해 유럽 문화 전반에 대해 연구해온 서양사학자 이광주 인제대 명예교수의 이 저작은 교양과 교양인이라는 광대한 영토를 넓고 깊게 담아냈다. 부제는 ‘유럽을 만든 인문정신’. 부제에서 교양에 대한 저자의 분명한 시선을 읽을 수 있다. 교양이란 다름 아닌 인문정신의 구현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 아래 저자는 그리스 로마에서부터 중세, 르네상스,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인문정신의 구현’을 통사적으로 살핀다.

특히 고전, 대학, 서재, 교육, 살롱, 극장, 여행, 지식인 등을 통해 교양, 교양인을 살폈고, 각 시대의 대표적 인문학자들을 종횡으로 엮어냈다. 84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저자의 세심한 설명은 교양의 역사를 따라가는 통로를 열어준다. 플라톤에게는 덕을 지향하는 교육이었고, 뛰어난 웅변술 교사 이소크라테스에게는 말(logos)과 언어에 대한 능력 함양이었던 교양은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 키케로에 이르러 교양 교육을 의미하는 ‘후마니타스’로 나아간다.

이어 단테는 지성적 우위의 자질, 즉 교양을 갖춘 인간을 최고의 인간으로 이해했고, 르네상스 시대의 휴머니스트들은 드디어 지식 사회라는 큰 공동체를 이뤄나간다. 이 같은 지식 사회의 토대 위에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공중의 폭을 넓혀 문학적 공중은 사상적, 정치적 공중으로 변신했으며, 이들은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사회 참가를 서슴지 않는 ‘모반하는 교양인’으로 탄생하게 된다. 이에 교양인은 더 이상 선민이 아닌, 우애의 인간 혹은 연대하는 인간이 됐고 이들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여러 혁명을 거치며 1920년대 1930년대 반 파시즘 운동으로 이어진다. 교양이 어떻게 탄생해 변화, 자기 증식 혹은 진화를 해왔는지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몇년째 인문학의 위기 혹은 죽음이 이야기되면서 동시에 교양인에 대한 대중적 갈망은 떠들썩해지는 아이러니한 시대에 책은 유럽사 중심이지만 긴호흡으로 읽어내려가다보면 결국 우리 시대 교양, 교양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최현미기자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