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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를 좋아하던 농촌 소년이 있었다. 학교수업이 끝나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초등학교 도서관에 남아 혼자 책을 읽곤 했다. “모두가 어렵게 살던 시절이라 학교수업을 파하면 바로 집에 와 밭일, 논일 등 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도서관에서 책만 읽으니 가끔 부모님께 꾸지람을 듣곤 했어요. 하지만 이때 차곡차곡 쌓은 독서습관이 평생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20일 문화일보에서 만난 김주수(57) 서울시농수산물공사 사장은 TV도 라디오도 없던 어린 시절, 책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였고, 책을 통해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나곤 했다고 회고했다. 김 사장은 청소년기 잠깐 방황했던 시절 마음을 가다듬게 했던 것도 바로 책이었다며 노만 빈센트 필 목사의 ‘적극적인 사고방식’이란 책을 소개했다.

“사실 인문계 고교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는데 집안이 가난해 취업을 하기 위해 상업계 학교에 갈 수밖에 없었어요. 실의에 빠졌을 때 저에게 힘과 용기를 준 이 책은 이후 제가 방황할 때마다 나침반 역할을 하곤 했어요.”

그는 공무원이 된 이후엔 다양한 분야에 걸쳐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고 했다. ‘삼국지’ 같은 중국의 고전이나 일본의 ‘대망’ 같은 대하역사소설, 경영학 서적, 기독교 서적, 미술 서적 등을 두루 섭렵했다.

그는 농수산물공사 사장 취임 이후에도 직원들과 함께 책을 한 권씩 읽고 한 달에 한 번씩 토론하는 독서모임을 주도하고 있다. 또 시장의 특성상 24시간 생동감 있게 움직이지만 상대적으로 삶의 여유가 부족한 농수산물 유통인들을 위해 매달 명저의 저자들을 초청, 강연을 듣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농정국장, 차관 등 30여년을 우리 농업의 발전을 위해 공직생활을 해 온 그의 프로필을 염두에 두고 농업인들에게 권할 책 한 권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미래농업연구회에서 펴낸 ‘강한 농업의로의 길’을 권했다. “이 책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정 이후 우리 농업이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강한 체질로 거듭나는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요즘 절망의 들녘 여기저기에서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고 있는 희망의 영농현장 사례를 보면 우리 농업은 ‘강소농’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다고 저도 자신합니다.”

그의 미니 홈페이지를 우연히 들여다보았다. 초기 화면에는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 어리석은 사람은 대충 책장을 넘기지만, 현명한 사람은 공들여서 읽는다. 그들은 단 한 번밖에 읽지 못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라고 씌어 있었다. 그의 평소 책 사랑을 가늠해볼 수 있는 경구다.

글 = 한평수기자 pshan@munhwa.com
사진 = 곽성호기자 tray9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