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17일 국무회의에서 202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배출전망치(BAU) 대비 30% 감축(2005년 배출량 대비 4% 감축)’으로 결정했다. 현재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은 비의무감축국(개도국)에 대해 BAU 대비 15~30% 감축을 권고하고 있다. 즉, 한국은 감축 목표를 설정할 의무가 없는데도 국제적으로 권고하는 최고 수준을 채택한 것이다. 국내 산업계는 그동안 자발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은 제조업 비중이 절대적으로 큰 우리 산업 구조를 고려했을 때 우리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여러 차례 우려의 뜻을 밝혀왔었다. 하지만 온실가스 감축은 우리가 더이상 피할 수 없는 대세이기 때문에 위기를 기회로 삼아, 오히려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과연 공격적인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은 앞으로 우리 사회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을 계기로 온실가스 감축을 둘러싼 궁금증을 살펴본다.


1. 왜 2020년이 목표인가

정부는 기후변화시대에 강화되는 선진국의 온실가스 규제 등 새로운 무역장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잡았다. 유럽연합(EU)은 자동차 온실가스 배출기준을 강화하고 있어 70% 이상을 수출에 의존하는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인 한국에 직접적 타격이 우려된다. 온실가스 감축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 직접적 경제손실만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5%, 국민건강 등 간접영향까지 고려할 경우 최대 GDP의 20%까지 감소한다는 것이 정부의 분석이다. 목표해인 2020년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해는 아니다. 다만 각국은 교토의정서의 1차 온실가스 감축 공약기간이 만료되는 2012년 이후의 새로운 온실가스 감축체제를 논의중이고, 금세기말 지구온도 상승을 2도 이내로 억제하는 글로벌 장기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2020년을 중기 감축목표해로 설정, 국가별로 발표중이다.

2. 개도국 최고수준 정한 이유는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에 따른 단기적 부담도 있지만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과 더 큰 국가이익을 고려해 목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적극적인 온실 가스의 감축을 통해 선진 각국의 탄소무역장벽에 대비하고, 유가변동에 취약한 에너지 패러다임을 바꿔 국가의 에너지 안보를 높이면서, 세계적으로 급팽창하고 있는 녹색시장을 선점하자는 취지다. 목표를 좀 더 높게 설정하면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3. 향후 부문별·업종별 목표 설정 어떻게

국무총리실과 녹색성장위원회를 중심으로 관계부처, 산업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부문별, 업종별 배출 전망과 감축잠재량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업종별 국제경쟁 상황을 면밀히 분석해 산업경쟁력을 유지·강화하는 방향으로 감축량을 배분하고 맞춤형 지원대책을 병행할 예정이라고 정부는 밝혔다. 또 이행계획 수립과 점검·평가를 위해 장관급 경제정책조정회의가 운영될 예정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분석과 목표관리를 위해 독립적인 상설 연구체계도 구축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산업분야의 단기적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감축여력이 많은 건물과 교통 등 비산업분야를 중심으로 감축노력을 강화키로 했다.

4. 배출전망치와 목표는 어떻게 도출됐나

BAU는 인위적인 감축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현재 추세로 볼 때 향후 발생할 온실가스 배출 추정치다. BAU는 경제성장률, 국제유가, 에너지 효율개선 추이 등을 모두 고려한 개념이다. 경제성장률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망을 사용했으며 2010년 4.75%에서 2020년 3.66%로 둔화되는 것을 기준으로 했다. 이후 감축수단별 감축잠재량 분석을 위해 상향식 모형인 마칼(MARKAL) 모형을 동원했다. 마칼은 개별 기술·정책을 활용해 감축할 수 있는 온실가스 양을 분석하는 모형이다. 온실가스 감축수준별로 거시경제(GDP·소비 등) 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하향식 모델인 거시경제일반균형모형(CGE) 등을 통해 감축목표 시나리오를 설정했다.

5. 기업들 ‘우려 한목소리’ 배경 뭔가

우리나라 경제는 역시 제조업이 이끌고 있다. 제조업은 산업 구조상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꼽힌다. 에너지를 많이 소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정하거나 향후 업종별 또는 분야별로 의무감축 기준을 정한다는 것은 국내 제조 산업이나 업체들이 온실가스 총량의 규제를 받게 된다는 얘기다. 그럴 경우, 기업들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별도 비용을 들이지 않을 수 없다. 한국철강협회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국내 철강산업의 경우 2010년 배출총량 대비 2013년에 5%를 감축할 경우, 연간 9045억원의 추가 경제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중소기업은 더 큰 문제다. 대기업들은 그나마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겠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한파속에서 영세한 중소 제조기업들은 온실가스에 신경을 쓸 여력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6. 선진국 진행 상황은

전세계에서도 유럽연합(EU) 등 유럽 선진국들이 가장 앞서 있다. EU는 2020년에 1990년보다 20% 감축, 영국은 34% 감축, 독일은 40% 감축하겠다고 제시한 바 있다. 스웨덴, 노르웨이도 선진국 권고 최대치인 40%를 감축하겠다고 최근 선언했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일본은 오랫동안 선진국 눈치를 살피다가, 최근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신임 총리가 취임한 이후 1990년 대비 25%까지 감축하겠다고 했다. 미국은 오바마 정부가 하원에서 설정한 2005년 대비 17% 감축목표를 상원에서 20%로 상향 조정한 법률안이 계류 중이다. 이처럼 선진국들은 사실상 온실가스 총량제한 동참이 대세로 자리잡힌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선진국들도 나름대로 자국 핵심 산업을 보호하면서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EU의 경우도 발전, 철강, 시멘트 등 6개 업종에 대해서만 시행하고 있다. 주력인 전자, 자동차, 기계 업종에 대해선 EU 스스로도 시기상조라고 인식, 보호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7. 개발도상국 사정은

문제는 개발도상국이다. 연간 탄소배출량이 5위내에 있는 중국과 인도, 대만 등은 온실가스 총량제한을 도입하지 않고 있다. 감축의무가 없으니, 자국의 경제 성장에 방해가 되는 온실가스 총량 감축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물론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이 전 세계의 대세라는 점에서 중국 등도 눈치를 살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최근 중국 정부는 2005년 대비 ‘현저한 수준’으로 애매하게(?) 감축할 예정임을 밝힌 바 있다. 인도는 국내법을 통해 감축 규제를 도입할 뜻을 시사하기도 했다. 대만은 2025년까지 2000년 수준으로 복귀하겠다고 했으며, 러시아의 경우는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10~15% 범위에서 감축할 뜻을 시사한 바 있다. 즉, 우리나라와는 달리, 개발도상국들은 아직 정확한 감축 한도를 정하지 않았거나, 다소 시간을 끄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선진국과 개발도상국들의 사례를 보면,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피할 수 없는 대세이기는 하더라도, 글로벌 시장속 한국의 현실을 감안해 어느 정도 사전에 인프라를 구축하고 충분한 준비 기간을 가진 후에 추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8. 국가적으로 경제 부담 없나

실제 국내 산업계는 기업들의 개별 피해 이외에도 국가 경제적으로도 심각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온실가스 배출 산업을 주력으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 산업구조상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총량을 제한할 경우 기업들의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국내에서 반대 의견이 많았던 일본의 경우, 일본 환경성은 총량제한 배출권거래를 도입할 경우 제지, 철강, 섬유, 시멘트 등 주요 산업의 경상이익이 무려 25~39%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지난 2005년 기준으로 일본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과 산업부문의 에너지 소비 비중은 각각 22.2%, 38.7%. 반면 한국은 각각 28.9%, 55.2%에 이른다. 즉, 우리보다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고, 산업부문의 에너지 소비 비중이 크게 떨어지는 일본도 총량제한 등에 따른 산업의 경상이익이 20~30%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 정부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올해 2월 에너지경제연구원 등의 자료를 인용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13년부터 BAU 대비 20%만 감축하더라도 2020년엔 83만여명의 실업자가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한 바 있다.

9. 정부도 경제 부담 알텐데…

정부가 경제에 미칠 악영향에도 불구하고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환경 문제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글로벌 과제라는 점, 국가의 격을 한차원 높일 수 있다는 점 이외에도 이번 과제가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목표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마치 시장을 개방해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쉽지는 않겠지만, 민·관이 적극적으로 노력해서 엄격한 기준에 맞는 산업 기반이 조성된다면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즉, 온실가스 감축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우리 기업들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육성하게 할 수도 있고, 글로벌 시장에서 녹색산업 시장을 선점하자는 뜻도 담겨 있다. 이번에 정부가 건물, 교통 등 비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먼저 감축 노력을 강화하겠다는 이유도 나름대로 산업계를 배려한 조치였다. 앞으로도 부문별 감축량 설정 과정에서도 업종별 국제경쟁력을 면밀히 분석해서 감축량을 배분하겠다고 정부는 밝힌 바 있다.

10. 기업에 대한 구체적 지원책은

아직 정부가 구체적인 숫자로 밝힌 지원액은 없지만, 우리 산업계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을 고려해봤을 때 정부도 기업들의 책임으로만 떠넘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산업계는 정부의 총량제한 설정에 대해 “향후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제도들을 마련함에 있어, 내부적인 갈등해소와 영향을 많이 받는 산업에 대한 지원 및 보완대책에 만전을 기해주기 바란다”고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특히 산업계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자금지원, 온실가스 감축 시설에 대해서도 에너지 절약시설에 준하는 세제 지원,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민관합동을 통한 감축 기술발굴 및 개발체제 구축 등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 정부의 경우 ‘카본트러스트’라는 비영리기관을 설립해 온실가스 초기 감축단계부터 기업들의 비용절감 노력을 지원하고 있다. 예를 들어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에 자금지원도 하고, 중소기업이 에너지 고효율기구 등을 구입하는 데 무이자 대출 프로그램도 운영하기도 했다.

김만용·방승배기자 my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