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국회 개원때마다 반복되는 원구성 협상으로 산적한 현안과 법안들은 뒷전이다.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른 상임위원장 배분이나 정략적 고려에 따른 원구성 파행이 의회를 멍들게 하고 있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대한민국 국회는 원구성 거부투쟁으로 시작된다. 4년 동안의 여야 갈등의 씨앗이 지루한 원구성 싸움에서부터 뿌려진다. 18대 국회의원들은 천신만고 끝에 2008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 당선돼 의정활동의 꿈에 부풀었겠지만 3개월여를 마냥 허송세월해야 했다. 임기가 5월30일부터였지만 원구성은 이로부터 89일 만인 8월26일에야 완료됐다. 원구성에 오랜 시일이 걸린 건 민주당 등 야당이 한·미쇠고기협상 문제를 고리로 걸어 원구성 협상에 응하지 않은 탓도 컸지만 이면에는 ‘상임위원장 나눠먹기’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구성 협상의 진통은 4년마다 국회의원 선거 후 되풀이되는 ‘연례’행사다. 야당은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무기한 원구성 협상에 응하지 않는 등원거부 투쟁을 벌인다. 원구성이 하염없이 늦춰지다 보면 아쉬운 쪽인 여당이 양보하게 돼있다는 걸 오랜 경험으로 안다.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 선출 및 의원들의 상임위 배치 등으로 요약되는 원구성을 둘러싼 싸움은 역설적으로 민주화가 시작된 13대 국회때부터 시작됐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인 6대 국회부터 12대 국회까지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직은 승자독식 원칙에 따라 다수당이 독점해왔다. 이 시기 집권당은 국회에서 계속 다수당을 유지해왔다.

원구성 싸움이 4년마다 되풀이되는 ‘살풀이’가 된 건 1987년 민주화 항쟁을 거쳐 1988년 실시된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당인 민정당이 단독으로 과반의석 획득에 실패하면서부터였다. 김대중의 평민당, 김영삼의 민주당, 김종필의 공화당 등 야3당이 차지한 의석이 60%였기 때문에 여야 4당이 의석수에 따라 상임위원장을 나누게 된 것이 현재까지 이어져온 잘못된 관행의 시작이었다. 원구성 싸움의 핵심쟁점인 상임위원장 배분은 국회법이나 국회규칙 어디에도 규정이 없다. 국회법 41조2항에는 상임위원장은 국회의장단과 마찬가지로 ‘본회의에서 선출한다’고 규정돼 있다.

18대 국회도 최초 임시회는 임기시작 35일 만인 7월10일에 가서야 소집돼 국회의장단을 선출했다. 이때까진 야3당이 이명박 대통령의 쇠고기 재협상 선언이 있을 때까지 개원에 응하지 않겠다고 버텼기 때문에 지체된 것이다. 그러나 더 지루한 싸움은 상임위원장 배분을 놓고 벌어졌고 국회의장단을 선출하고서도 54일이 더 지나서야 상임위원장 선출과 상임위원장 배분이 완료됐다. 과반인 153석을 획득한 한나라당과 81석을 얻은 민주당은 상임위원장을 12대6으로 나눠먹기로 쉽게 합의했지만 문제는 법제사법위원장 자리 등을 둘러싼 힘겨루기였다. 법사위는 다른 상임위를 통과한 모든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에 체계·자구 심사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에 17대때는 야당인 한나라당이 끝까지 고집했다.

이현우(정치외교학) 서강대 교수는 “미국 같은 경우 다수당이 독식하는데 우리는 권위주의 정부가 야당 달래기 차원에서 상임위원장을 나눠준 데서 비롯된 만큼 이제는 바꿀 필요가 있다”며 “여야 합의로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제도적 강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세동기자 sdg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