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국회의 예산안 처리가 헌법에 규정된 법정 기한(12월2일)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를 지탱해왔던 재정집행이 지연돼 자칫 한국 경제가 ‘더블딥(경기회복 국면에서 다시 침체)’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올해 한국 경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드물게 플러스(+) 성장을 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재정지출 확대인데, 국회의 내년 예산안 의결이 늦어짐에 따라 2010년 상반기(1~6월) 경기가 다시 급랭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1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분기별 예산집행률은 1분기(1~3월) 30.7%, 2분기(4~6월) 32.2%, 3분기(7~9월) 22.0%, 4분기(10~12월) 16.1%로 갈수록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산 조기집행을 위해 상반기에 예산의 많은 부분을 써버림에 따라 4분기에는 올 1·2분기의 절반 수준으로 ‘쓸 수 있는 돈’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는 한국 경제가 내년에도 순항하기 위해서는 올해도 지난해처럼 ‘회계연도 개시 전 배정제도’를 통해 내년 예산을 올 4분기에 앞당겨 쓰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회계연도 개시 전 배정제도란 조기 집행을 필요로 하는 공공사업비 등을 회계연도 개시일(다음해 1월1일) 이전에 앞당겨 계약을 하거나 선급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현실적으로 올 4분기에 쓸 수 있는 예산이 한 해 예산에 16.1%에 불과한 상황에서 회계연도 개시 전 배정제도를 시행하지 못할 경우 4분기에 성장률이 급락하면서 경기가 ‘영하권’으로 다시 추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국회에서 4대강 사업과 미디어법 재·개정 문제 등의 이유로 국토해양위,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교육과학기술위, 운영위, 정보위 등 5개 상임위는 내년 예산안 심의를 위한 일정조차 잡지 못한 채 공전을 거듭하고 있어 회계연도 개시 전 배정제도는커녕 내년 1월1일부터라도 과연 예산이 제대로 집행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높아지고 있다.

내년 예산은 사상 최대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까지 편성한 올해 예산과 비교할 수조차 없을 만큼 규모가 작다. 제대로 집행된다고 해도 경기 활성화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때 집행조차 되지 않는다면 내년에 국내 경기가 급락하면서 더블딥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용걸 재정부 2차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빨리 금융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올 상반기에 전년 같은 기간보다 60조원 이상 예산을 조기 집행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예산안 통과가 늦어지면 정부 지출 확대로 지탱해 온 경기 회복세가 민간 투자와 소비 확대로 연결되는 고리가 끊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조해동기자 haed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