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의 원칙없는 무소신 행정과 추진 절차상의 문제 등으로 ‘행정구역 자율통합’이 표류위기에 몰렸다. 이번 행정구역 자율통합은 현재 국회에서 논의중인 전국단위 행정구역 개편의 예열작업이라는 점에서 백년대계인 행정구역개편에 차질이 우려된다.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은 12일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지난 10일 자신이 발표한 6개 행정구역 자율통합 대상지역 중 “경남 진주·산청과 경기 안양·군포·의왕은 통합(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수개월간의 예고와 자율통합 건의서 접수, 지역의 주민여론 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발표했던 방침을 불과 이틀 만에 뒤집은 것이다.

이 장관의 이같은 번복에는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12일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행정구역 통합 방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고 이 장관이 해당 지역을 통합대상 지역에서 제외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안 원내대표의 지역구는 의왕·과천으로 이 장관의 당초 발표대로 통합이 이뤄지면 안 원내대표의 지역구는 두 개로 나눠지게 된다. 진주·산청이 통합될 경우에도 신성범 한나라당 의원의 지역구(산청·함양·거창) 재조정이 불가피해진다. 이와 관련해 안 원내대표는 “제외된 2곳은 선거구 변경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당초부터 통합 대상에서 빼기로 했던 지역”이라고 해명했다. 이 장관과 안 원내대표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 장관이 당초 통합대상지역을 발표할 때 두 곳을 제외해야 하지만 이 장관은 발표를 강행했다. 결국 시·군 자율통합을 최대한 확대해 향후 진행될 전국단위 행정개편의 추진력을 확보해야 하는 당위와, 자율통합이 국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실질적인 한계 사이를 배회하다 이같은 번복사태가 빚어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번 번복 사태는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향후 행정구역개편 전체 일정에 차질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신뢰도 추락으로 통합의 추진력이 급격히 약화된 반면 통합 대상지역의 통합반대 세력들에게는 힘을 실어줘 최악의 경우 통합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행안부가 이처럼 정치권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한 반면 실제 통합추진 과정에서는 ‘밀어붙이기’로 일관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행안부는 통합의 비용과 시간을 절감한다며 ‘주민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여론조사에서 찬성률이 높은 지역의 경우 지방의회 의결만 거치면 주민투표를 생략하겠다는 것이다. 행안부는 관련 지자체에서 주민투표 실시를 촉구하며 반발하자 지난달 말 추가 인센티브까지 발표하면서 계획대로 통합을 밀어붙였다. 여론조사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최명식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