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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老兵)은 죽지도 않았을 뿐더러, 사라지지도 않았다. 산울림 시절의 감성 짙은 작품이 더이상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은 다수의 노병이 지닌 오래된 관습의 병폐에서 유추한 그릇된 오류일 뿐, ‘그’에겐 적용되지 않는 예외의 법칙 같았다. 미니앨범 ‘해피스트’ 이후 거의 1년만에 내놓은 김창완밴드의 1집 ‘버스’는 김창완의 천재적 감각이 빚어난 멜로디의 향연과 공감각적인 사운드의 밀도있는 조합, 은유로 포장된 가사 전달력 등이 한껏 재주를 부린 수작이다.

산울림 정규 앨범 13장의 주옥같은 곡들을 한데 모아놓은 듯한 이 음반은 21세기 트렌드 장르의 길에서 빗겨나 있고, 컴퓨터로 가공한 인공 사운드와도 한참 떨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신선하고 따뜻한 사운드는 이 음반의 최대 미학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신을 이해해나가는 방편으로 은유적이지 않을 수 없는 존재죠. 삶을 빗대 이해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감히 음악에 도전하면서 속내를 숨길 수 있나요? 이 음반에 신선함이 숨겨져 있다면 아마 여러 주제를 담고 있는 음반의 모든 노래들이 의도를 숨기고 있는, 그래서 은유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의도되지 않은 순진한 태도가 이번 음반에 잘 담겨있는 것 같아요.”

막내동생을 잃은 슬픔에 무조건 쏘아붙였던 ‘해피스트’ 음반과 달리, 새 음반은 차분하고 관조적인 시선이 지배적이다. “‘해피스트’는 분노의 자식이라고 해서 도발적이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강박의 소산들이 있었죠. 하지만 이번에는 마음을 많이 닦았어요. 행복이나 마음 내려놓기 등 상당히 안정된 그런 심리를 반영하고 싶었어요.”

곡들은 대개 역설의 관계에서 상생의 의미를 되새긴다. 푸념조의 노랫말과 대비되는 역설적인 제목을 단 타이틀곡 ‘굿모닝’, 도시의 유기된 아이의 모습을 상상케하는 ‘앞집에 이사 온 아이’, 결혼을 두려워하는 이들의 처지를 반영한 ‘결혼하자’ 등은 모두 역설이 잉태한 의미있는 메시지들이다. 그의 곡들에서 ‘와’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부분들은 원초적 감수성이 만들어낸 독창적인 흔적들이다.

첫 곡 ‘내가 갖고 싶은 건’부터 4번 트랙 ‘굿모닝 파트2―어쿠스틱 버전’까지 이어지는 감성 위주의 포크록 선율들은 ‘너의 의미’나 ‘회상’ 같은 산울림의 수작들을 밟고 올라서는 진화의 산물이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형태를 띤 ‘그땐 좋았지’는 세계 시장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구성과 연주력을 자랑한다. 특히 연주곡 ‘삐에로와 광대’에서 보여주는 트윈 기타의 협연은 귀의 만족감을 뚫고 심장의 두근거림을 증폭시킨 뒤 오금을 저리게 하는 짜릿한 전율의 상징이다.

“원초적 감성? 음. 이번 음반 준비하면서 그 전의 감수성을 죄다 내려놓았지요. 모든 감수성을 해체시키고 음악을 만드니 미완의 작품이란 느낌이 컸어요. 제가 느끼기에 그런 미완성적인 뉘앙스가 더 생동감있게 만드는게 아닐까요? 작위성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감상자들에게 다양한 해석을 낳게 하는 잠재력이 있을 것 같아요.”

이 음반의 사운드 디렉팅을 맡은 나카무라 소우이치는 두툼한 드럼소리와 빈티지 키보드 사운드 등을 통해 예쁜 멜로디에서 놓칠 수 있는 예술적인 틈을 구석구석 메웠다. 김창완은 “이번 음반은 산울림의 문학성에 밴드 멤버들의 걸출한 연주, 사운드 디렉터의 노력이 잘 어우러진 결과물”이라고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그는 ‘씩’하고 따뜻하게 웃으며 작별인사를 했다. 어떻게 그런 웃음에서 그런 무서운 음악이 나올 수 있는지 아직까지도 의문이다.

김고금평기자 dann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