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부터 시작된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의 키워드는 단연 위장전입이다. 새로운 메뉴는 아니다. 이전의 청문회에서도 더러는 낙마했고, 더 많은 이들이 살아남았다. 순수하게 위장전입만으로 좌절한 사례는 드물다. 흠결이긴 해도 결정적 하자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이번에 위장전입이 새삼 민심을 건드리는 건 전력자가 너무 많아서다. 또 너무 태연해서다. 더 근본적으로는 자신들의 삶과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위장전입의 유형은 다양하다. 선거 후보자를 도우려고, 각종 보상금을 챙기려고, 지자체 승격에 필요한 주민수를 채우려고 주소지를 옮기기도 한다. 그러나 주력은 역시 부동산, 교육과 연계돼 있다. 이 둘은 공유하는 대목이 있다. 개인 혹은 가족의 ‘자산’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부동산은 성장시대를 관통하는 ‘욕망의 사다리’였다. 땀 흘린 근로소득보다 부동산 투자로 얻은 차익이 재산 형성의 급행 코스였다. 요지의 땅과 아파트에 돈이 몰렸고, 그 와중의 반칙 행위가 위장전입이다. 좋은 학군을 좇는 위장전입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른바 좋은 초·중·고교를 거치면 좋은 대학을 들어가고 좋은 직업을 얻게 될 확률이 높다. 사회적 지위를 대물림하기 위한 일종의 투자다. 당장 경제적 이득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부동산 위장전입보다 낮춰 볼 일은 아니다.

이런 반칙은 타인의 사회적 기회를 잠식한다. 위장전입으로 인해 부동산 투자 적격자 중 일부는 탈락한다.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을 권리를 빼앗기는 학생도 나온다. 하지만 그런 방법을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규범과 공익에 반하는 일을 차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회를 가로챈 사람들이 오히려 득세하는 사회에 남는 건 분노와 상실감이다.

도의적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위장전입은 주민등록법 제37조를 거스르는 명백한 위법이다. 법정 형량도 가볍지 않다. 그런 위법 전력자들이 공직자, 그것도 고위직이 되겠다고 나선 게 현실이다. 그뿐 아니다. 김준규 검찰총장에 이어 민일영 대법관 후보자와 이귀남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줄줄이 위장전입에 연루돼 있다. 위법의 주홍글씨를 새긴 ‘법치의 지휘자’들을 국민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과거 청문회에서 위장전입이 드러난 후보자들이 처벌받은 적도 없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다. 마지못해 시인하고 사과하면 그걸로 끝이다. 위법과 탈법에 대범한 법치는 결국 준법 불감증으로 이어질 것이다.

궁금한 것은 인사의 배경이다. 청와대와 대법원은 후보자들의 위장전입 사실을 알고도 제청했다는 뉘앙스를 비쳤다.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위장전입 정도는 별 거 아니라는 인식이다. 과실도 아닌 의도적 범법 전력은 공직자의 중대한 결격 사유다. 유야무야 넘길 사안일 수 없다. 그게 아니라면 쓸 만한 사람 중에 그런 흠결이 없는 이가 드물다는 얘기일 수 있다. 이 경우는 훨씬 비극적이다. 어떤 이유든 국민을 납득시키지 못한다.

폴리스라인을 넘은 의원들에게 수갑을 채운 미국 경찰에 박수를 보낸 것은 예외 없는 엄정한 법 적용 때문이다. 남들도 나처럼 규범을 지킨다는 믿음이 있을 때, 성실히 노력하면 대가가 돌아온다는 희망을 가질 때 그 사회의 기반은 단단해진다. 예외가 인정되는 법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칙을 통한 성공이 용인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1980년대 강남 개발 붐이 일었을 때 법을 지키기 위해 안 간 사람은 교육·경제적으로 손해를 봤고, 법을 어기고 간 사람은 이익을 봤다.” 집권 여당 최고위원 말이다.

후보자들의 위장전입 전력을 ‘과거의 실수’로 치부할 수는 있다. 지금와서 왜 그랬느냐고 굳이 추궁하는 것도 부질없다. 문제의 핵심은 사회 지도층에서 ‘반칙’ 전력자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장삼이사들은 주변에서 그런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데 고위 공직자가 되겠다는 사람마다 이런저런 얼룩을 달고 나오니 놀라고 실망하는 것이다. 법치와 친서민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는 이에 대해 해명하고 상응한 조치를 취할 책임이 있다.

[[김회평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