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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세계적인 연출가 스즈키 다다시(鈴木忠志·70)는 스타니슬랍스키 메소드에 비교되는 배우 훈련술 스즈키 메소드를 고안해낸 연극연출가다. 1982년부터 일본 도야마(富山)현 난토(南)시 도가(利賀)촌에서 일본 최초의 국제연극제인 도가페스티벌을 열고 있는 그는 올해도 8월15일부터 30일까지 페스티벌을 열었다. 그는 이번 페스티벌에 그의 대표작 ‘리어왕’과 ‘폐차빈민촌의 가치가치산’을 공연하면서도 축제에 참가하는 모든 작품을 보고 또 매일 1, 2시간씩 단원들의 배우훈련을 거르지 않았다. 도가페스티벌 마지막 날인 30일 오후 축제 공식카페인 볼카노에서 그를 만났다.


먼저 궁금한 것은 고희(古稀)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는 그의 건강유지의 비결. 축제기간 내내 매일 2, 3편의 연극을 보고 단원들과 연습도 하루도 거르지 않으며 공연 때는 큰 소리를 지르며 객석정리까지 한다. 스즈키 메소드를 익히면 건강에도 좋으냐고 묻자 그는 파안대소하며 “좋은 환경, 좋은 극장이 있는 여기에 있어서 그렇다”며 답했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손님들을 위한 서비스”라고 말했다.

“여기에 온다는 자체가 연극을 좋아한다는 것이고, 또 연극을 좋아한다고 해도 보통 결심을 갖고 올 수 없는 곳입니다. 소문을 듣고 한 번은 올 수 있지만 한 번이라도 나쁘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손님들의 결심에 답을 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금 저는 연극인이 아니라 호스트로서 손님들을 기쁘게 하는 일이 목표입니다.”

도쿄(東京)에서 도가로 근거지를 옮긴 이유를 묻자 그는 “오카네(おかね·御金·돈)가 없어서”라고 간단하게 말했다.

“대도시는 돈이 필요합니다. 연습을 하는 데도, 극장을 빌리는 데도 큰 돈이 들어갑니다. 또 오랜 시간 할 수도 없습니다. 여기는 돈도 필요 없고 시간도 자유입니다. 밤에 불꽃놀이도 할 수 있습니다. 질 높고 강한 연극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시장이 있는 도쿄에서 작업을 하는 것이 옳겠지요. 하지만 도가가 공장이라면 도쿄는 시장입니다. 서울에서 많이 팔리는 현대자동차가 공장은 울산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또 “진정한 세계화를 위한 우리만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찾기 위해”라고 덧붙였다.

“당시 일본은 세계화가 막 시작할 때였습니다. 외국에서 기술을 도입, 모방하는 것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우리만의 정체성이 없으면 세계로의 진출은 불가능합니다. 스즈키 메소드라는 충분히 유니크한 수단이 있는 만큼 세계를 공략할 상품을 만들 수 있다고 봤습니다.”

현재 도가페스티벌에 대해 평가해 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주저없이 “질 높은 관객에 의한 세계로의 보편적 문화발신지”라고 답했다.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도쿄에서 꼬박 하루를 걸려 찾아오는 지식인들, 오피니언 리더들이 중요합니다. 지역주민들이 관객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놓쳐서는 안됩니다. 또 도가의 고객이 반드시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뿐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중앙정부 관계자를 비롯해 이런 사회운동이 필요하다고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작은 오지에서 자신있는 문화발신을 세계에 내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의 작품을 보면 세상이 대부분 정신병원이다. 이번 공연의 ‘리어왕’도 정신병원이었고 ‘폐차빈민촌의 가치가치산’에도 정신과 의사와 간호원이 나오는 등 그의 작품 대부분에는 정신병원의 느낌을 깔고 있다.

“세계의 어느 한 나라도 병들지 않은 나라가 있습니까. 또 환자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건강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지 않습니까. 문제는 건강하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지요. 더구나 돈까지 있는 이들은 매일 목적도 없이 놉니다. 그래서 제 연극에는 항상 환자들이 나오는 겁니다.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서.”

지난해 ‘폐차장의 기인들’에서 장이주, ‘엘렉트라’에 변유정 등 5명, ‘리어왕’에 이수연 이성원 등 3명의 한국 배우들이 나온다. 최근 그의 작품에 한국배우들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를 물었다.

“한국배우들은 ‘파이팅 정신’이 좋습니다. 야성적 에너지가 넘칩니다. 일본 젊은 배우들에게는 그것이 없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고 청결하지만 에너지가 없습니다. 헝그리 정신이 없지요. 또 저는 한국어가 강하고 좋습니다. 음악적인 힘이 있습니다. 싸움하는 것 같거든요.”

그가 개발한 ‘스즈키 메소드’는 세계적인 신체 훈련 방법론. 연극 배우는 물론 성악, 무용 등 다른 장르에서도 좋은 훈련법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효과적 발성으로 인해 영국에서는 변호사들이 배운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연기론이다. 스즈키 메소드에 대해 묻자 그는 “몸의 감수성을 활성화하는 것”이라고 한마디로 요약했다.

“고급차는 뛰어난 연비에 디자인도 좋아야 하고, 안정성도 뛰어나야 합니다. 속도도 빨라야 하고요. 인간 몸의 연비를 높이는 훈련이 바로 스즈키 메소드의 요체입니다. 전통무용, 발레, 무술 등 몸을 쓰는 모든 방법을 종합해 스즈키 메소드를 만들었습니다.”

스즈키 메소드는 자세가 낮다. 이를 두고 농경문화 특유의 농사 짓는 자세에서 유래했다는 시니컬한 지적이 있다.

“중심을 내린 것은 안정성을 위해서입니다. 차가 속도를 내려면 가라앉아야 하지 않습니까. 높아질수록 불안하지요. 뒤꿈치를 올리고 칼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자세를 낮추라는 것이지 (꾸부정한 자세로 농사를 짓는) 농경문화에서 유래한 것은 아닙니다. 중심만 안정되게 유지하면 되지 굳이 낮을 필요는 없습니다.”

스즈키는 또 풍년제 등 세시풍속과 제의 등에서 철학적 방법론을 더했다.

“일본의 스모는 지금은 스포츠지만 하나의 의례였습니다. 나쁜 신과 좋은 신이 나와서 겨뤄 좋은 신이 나쁜 신을 물리쳐 풍년을 가져온다는 제의였는데 지금은 하나의 스포츠로 발전했습니다. 유럽에서도 사냥을 할 때 사슴모습의 춤을 췄다고 하지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생활과 밀접한 곳에서 춤과 연극이 나왔습니다. 그 근원적 기억을 살려내야만 제대로 (춤추고 연기)할 수 있습니다. 현대 도시인은 더 이상 농사 짓고 사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은 그대로입니다. 셰익스피어극을 제대로 하려면 그 당시의 말을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고대적 추억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몸의 감각으로 그런 말을 했었는지 알아야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스즈키는 도가페스티벌의 의의로 ‘진정한 교류’를 꼽았다.

“컴퓨터가 발달하며 직접적인 인간관계가 어려워졌습니다. 이 시대에 연극이 더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모두가 함께 자고, 함께 먹고 마시며 지금 볼카노에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매일 밤 만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런 인간관계의 기본적 교류가 남아있는 것이 바로 도가입니다.”

스즈키 메소드 교육은 엄격하기로 소문이 났다. ‘폐차빈민촌의 가치가치산’ 연습을 지켜봤는데 1시간40분동안 한 배우에게 같은 장면을 반복시키는 것을 봤다. 체벌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이렇게 엄격하게 교육, 훈련시키는 배경에 대해 묻자 “연극인이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TV가 처음 나왔을 때 야구경기가 더이상 관객을 모으지 못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반대로 극장에는 실제 얼굴을 보러 사람들이 많이 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반대였습니다. 운동장에는 사람들이 더 몰렸는데 극장에서는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야구나 축구는 TV중계를 위한 운동을 하지 않았고 배우들은 TV를 위한 연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축구나 야구는 강한 훈련 없이 좋은 경기를 할 수 없지만 TV연기는 훈련을 받지 않고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배우들이 게을러졌습니다. 극장에 갔더니 배우들의 연기가 TV보다 못한데 뭐하러 극장에 배우를 보러 가겠습니까.”

갈수록 상업화, 비인간화 돼가는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자세를 가다듬게 하는 거장의 일갈이었다.

도가(일본) = 글·사진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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