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943년 목포상업학교 재학시절

뭍에서 한참 떨어진 작은 섬마을 소년에서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자까지…. 영욕의 인동초(忍冬草) 85년 삶을 살다간 김대중 전 대통령. 김 전 대통령은 정치에 입문해 본인이 묘사하듯 ‘다섯 번의 죽을 고비와 6년의 감옥생활, 10년의 망명과 연금생활’이란 형극의 길을 걸었다.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되고 정권교체를 이룬 대통령이 돼 첫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던 김 전 대통령의 삶은 한국 현대사 그 자체다.

◆ 하의도 섬소년, 정치를 꿈꾸다 = 김 전 대통령은 1924년 1월6일 전남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에서 김운식씨의 4남2녀 중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마을의 이장이었으며 하의도 소작 반대투쟁에 앞장섰던 아버지 김씨에게선 민족의식을, 예닐곱살 김 전 대통령이 엿장수의 담뱃대를 훔쳤을 때 싸리나무 회초리로 핏물이 배어 나올 만큼 때렸던 어머니 장수금씨에게선 강한 독립심과 바른 것을 명확히 하는 기질을 물려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신문 정치면에 가장 관심을 가졌던 그는 당시 명문이던 목포상업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한다. 일제 징병을 피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해운회사에 취직한 김 전 대통령은 20대 초반부터 10년 동안 해운회사를 경영했고 한때 목포일보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광복 이후 잠시 여운형이 주도하는 건국준비위원회(건준)에 참여했다 8개월 만에 탈퇴한 그는 6·25전쟁 당시 공산군에 체포돼 목포형무소에 수감됐다가 9·28 수복 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그뒤 목포 해운회사를 운영하던 김 전 대통령은 정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1954년 광복 후 세 번째 치러진 민의원 선거에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의 고배를 마신다.

◆ 민주화와 함께 걸어온 삶 = 그의 정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강원 인제로 옮겨 치른 4, 5대 총선에서도 낙선의 고배를 마신 그는 1961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지만 사흘 후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 의원등록도 못해 보고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악연의 시작이다. 이 와중에 첫째 부인 차용애씨와 사별하고 이희호 여사와 재혼하지만 재혼 열흘 만에 반혁명사건에 연루돼 한 달여간 수감생활을 했다. 목포로 지역구를 옮겨 치른 6, 7대 총선에서 잇따라 당선되며 정치스타로 발돋움한 김 전 대통령이 민주화의 상징으로 떠오른 것은 1971년 대선 패배 이후다.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역전승을 거두며 신민당 대통령 후보가 된 그는 박 전 대통령에게 90여만표 차이로 패배한다.

그 뒤 그는 독재정권의 실질적인 위협이 됐고 민주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지만 10여년 동안 혹독한 시련기를 겪는다. 1973년엔 일본 도쿄(東京)에서 중앙정보부에 의해 납치당하기도 하는 등 박정희 정권에서 신군부 정권에 이르는 기간 동안 55차례 가택연금, 6년여의 옥고, 두 번의 망명을 겪고 네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긴다. 박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 이후 짧은 ‘서울의 봄’ 뒤 신군부 정권이 들어선 뒤엔 1980년 9월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 1982년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1985년 귀국한 김 전 대통령은 1987년 6월항쟁 이후 대통령 직선제의 기회를 맞이했다. 그러나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며 정권교체를 열망하던 민심에 화답하지 못했다. 1992년 대선마저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뒤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아태평화재단을 만들며 현실 정치를 떠나기까지 했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그는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며 정계에 복귀하는 도박을 감행해 1997년 5월 15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다. 그에겐 네 번째 대통령 도전이었다.

◆ 마침내 핀 인동초 = 1997년 12월18일 김 전 대통령은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를 39만표 차이로 누르고 15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대한민국 헌정사 최초의 여야간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역사적 사건이자 김 전 대통령 개인적으로 40여년간의 모진 시련 끝에 얻은 값진 성취였다. 그는 취임 초기부터 적극적인 외자 유치에 나서며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조기에 상환하기도 했다.

‘햇볕정책’으로 불리는 대북포용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북한과 대화의 길을 열기도 했다. 2000년 6월15일엔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40여년에 걸친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과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분단의 역사를 다시 쓴 공로로 노벨평화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민주화의 상징으로, 정권교체를 이룬 대통령으로, 남북 화해의 물꼬를 튼 인물로 역사에 기록될 ‘인동초’는 85년간 영욕의 세월을 뒤로하고 영면했다.

민병기기자 mingming@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30대 시절

이미지 크게보기 1962년 5월 이희호 여사와의 결혼식

이미지 크게보기 김 전 대통령 장남 김홍일(오른쪽), 김홍업의 학장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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