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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에 새겨진 글자가 한글과 닮았고, 언어의 문장 순서가 우리말과 같으며, 토씨가 있고, 기초어휘도 무려 1000개 이상이 같거나 유사하다.…뜻과 발음은 다르지만, 한국식으로 읽을 수 있다.…산스크리트 알파벳은 마치 한글 같아서 그 발음이 ‘꺼커거, 쪄쳐져, 떠터더, 뻐퍼버, 셔허’ 등과 같이 삼중대비 현상을 보이며….”

우리말과 중앙아시아 언어의 관계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김병호 박사의 인도 구자라트 지역 탐사 견문록 중 일부다.(장영준, ‘언어 속으로’·태학사) 이 견문록은, 비록 그 뜻과 발음은 한국어와 다르지만 한글과 비슷하게 생겨서 산스크리트 문자를 우리말처럼 읽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말뜻은 전혀 다르지만 글자는 한글을 쏙 빼닮았다는 것이다.

이를 연상케 하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부톤 섬에 거주하는 6만명의 토착민 찌아찌아족 학생들이 자신들의 말을 한글로 표기한 교과서를 통해 부리(쓰기)와 바짜안(읽기) 및 뽀가우(말하기)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 찌아찌아족은 독자적인 언어는 갖고 있으나 표기할 문자가 없어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런데 한글을 공식문자로 채택함으로써 그들의 문화를 기록·재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권재일 국립국어원장은 한국어문교열기자협회의 근간 ‘말과 글’에서, 실제 가능한 방법으로 무문자 부족에게 한글을 보급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한글 세계화에 성공하려면 현지 정부와의 마찰을 없애고 로마자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해야 하는데, 그 두 가지를 모두 극복했기에 가능했다”는 권 원장의 평가가 아니더라도 이번 사례는 ‘한글 수출’의 전범으로 기록될 만하다.

일찍이 문화일보는 문자 없는 민족에 한글을 보급하는 세종프로젝트를 소개한 바 있다. 2000년 1월1~6일자의 ‘훈민정음이 세계를 묶는다’ 시리즈가 그것. 당시 27년간 훈민정음 연구에 몰두한 김석연 미 뉴욕주립대 교수의 저서도 소개됐는데, 그는 이 책에서 한글을 확장한 52개 정음기호로 전 세계의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찌아찌아족을 통해서도 어떤 언어든 한글로 기록 가능함이 입증되고 있는 지금 모국인 한국에서 한글을 홀대하고 영문과 마구 섞어 쓰는 풍조가 사라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황성규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