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사진=정하종기자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논버벌 퍼포먼스(non-verbal performance·비언어극) ‘난타’가 2000년 7월 서울 중구 정동에 전용관을 마련한 이래 7월22일 1만회 공연을 돌파했다. 1997년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초연, 지금까지 지방공연과 해외공연을 포함하면 1만3750회. 모두 470만6320명이 관람했고 총매출액은 85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올해는 일본 특수로 평년 매출 150억원을 훌쩍 넘어 2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난타’는 1999년 세계 최대의 공연예술 페스티벌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주목받기 시작, 미국·멕시코·아르헨티나·프랑스·스페인·터키·러시아·이스라엘·호주·일본 등에 이어 최근 아프리카 튀니지·모로코까지 5대양을 건너 6대주 37개국 관객들을 만났다.

영국 런던과 태국, 아프리카 공연에 이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강연을 마치고 2일 귀국한 ‘난타’신화의 주인공인 제작자 송승환(52·사진)씨를 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뮤지컬전용관 코엑스아티움 사무실에서 만났다.

먼저 전용관 1만회라는 새로운 기록에 대해 축하하자 그는 “이번에 런던 공연을 갔더니 세인트 마틴 극장에서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쥐덫’이 57년째 공연중”이라며 “‘난타’도 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면서 껄껄 웃었다.

“그때 아마 저는 가고 없겠지요. ‘사람은 가도, 작품은 계속된다!’ 멋지지 않습니까.”

송씨는 “무엇보다도 칼 1만6000여개, 도마 1500여개가 닳아서 없어지는 동안 사고 없이 작품을 이어온 배우, 스태프들이 고맙다”고 새로운 기록 수립의 공을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돌렸다.

그는 ‘난타’의 성공 비결에 대해 “한국에 온 관광객이라는 블루 오션의 개척”이라고 요약했다.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나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도 잘나가는 작품의 관객은 70% 이상이 관광객입니다. 공연시장 산업화를 위해서는 내수시장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현재 ‘난타’관객의 80%는 관광객. 그러나 송씨는 한국을 찾는 관광객에 만족하지 않았다. 세계 공연예술의 중심인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에서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지금도 해외로 관객을 찾아 적극 나서고 있다.

그는 “앞으로 아시아 시장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7월22~26일 3700석짜리 방콕 로열파라곤홀 ‘난타’공연이 매진됐어요. ‘동방신기’의 공연은 3만2000석인데 불과 몇시간만에 매진됐다고 합니다. 아시아 시장은 우리 공연이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방콕, 싱가포르, 대만을 우리 시장화해야 해요. 아시아에는 자막을 보는 문화가 있습니다. 뮤지컬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류 스타들을 이용하는 스타마케팅도 한 방법입니다.”

송씨는 작품 내용 측면에서는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패밀리쇼’를 만든 것”을 성공요인으로 꼽았다.

“과거에 연극은 식자층이, 배운 사람이 보는 장르였습니다. 그러나 ‘난타’는 초등학생부터 박사님까지 모두가 똑같은 장면에서 똑같이 웃을 수 있는 쇼입니다.”

그는 이 부분에서 ‘쇼’를 특히 강조했다.

“외국에서 공연은 모두 ‘쇼’입니다. 말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공연은 ‘쇼’라고 하면 아주 부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저는 대중적인 ‘쇼’를 만들고 싶었어요.”

송씨는 ‘쇼’에서 한발 더 나아가 ‘축구경기’같은 작품을 희망했다.

“‘관객모독’으로 유명한 피터 한트케가 ‘축구시합의 90분 같은 연극을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골이 들어가면 옆사람을 끌어안고 좋아하고, 골을 먹으면 세상이 무너진 듯 좌절하고, 감동의 교감 폭이 축구경기만큼 익사이팅한 경우를 찾기 힘듭니다. 연극이, 공연이 바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작자가 이같이 열린 생각을 갖고 있으니 ‘난타’는 12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에 맞게 진화중이다. 극중 똥침을 찌르는 장면이 있는데 현지 문화에 좀 어울리지 않으면 바로 줄인다. 많지 않지만 대사도 현지어로 순간순간 바꾸는 열린 순발력이 뛰어나다.

‘난타’의 이 같은 순발력은 제목에서도 발휘된다. ‘난타’는 주방에서 요리하는 과정을 사물놀이로 표현한 작품. 국내 공연에서는 사물놀이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서구에서는 요리에 더 매력을 느낀다. 무대에서 실제 요리를 하는 퍼포먼스는 ‘난타’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쿠킹(Cooking) 난타’이고, 동남아같이 타악에 익숙한 지역에서는 ‘난타 쿠킹’이라는 제목으로 공연한다.

“‘난타’가 이제는 ‘타악’을 지칭하는 보통명사가 된 것 같아요. 페스티벌이나 청소년들의 공연에 가면 ‘난타’경연이라고 한두팀씩 꼭 있거든요. 새로운 공연 장르를 만들어냈다는 것에도 큰 자부를 느끼고 있습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했다. ‘난타’도 언젠가 힘이 빠질 때가 올 것 아니냐고 좀 어두운(?) 지적을 하자 송씨는 “아직은 위기감을 못 느끼고 있다”면서도 “후속작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몇년전에 비보이춤을 주제로 한 ‘UFO’를 만들었는데 너무 앞서 나간 것 같아요. 그땐 ‘비보이’라는 개념도 없을 때였잖아요. 그때의 실패를 교훈삼아 준비중인 것이 ‘디 오토(The Auto)’입니다. ‘난타 2’격으로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벌어지는 논버벌 퍼포먼스인데 10월쯤 소극장에서 2, 3주간 시험공연으로 무대에 올릴 예정입니다.”

차 정비공장에서 벌어지는 논버벌 퍼포먼스는 ‘스톰프’ 대미의 에피소드와 유사해 보인다. 송씨는 이에 대해 “‘스톰프’는 컨셉트 중심의 공연이고, ‘디 오토’는 ‘난타’처럼 스토리와 캐릭터를 살린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또 하나는 가제가 ‘탈’이라는 작품인데 안동 하회탈춤을 주제로 한 작품입니다. 1000석 규모의 안동문예회관 오픈 기념으로 준비중입니다. 하회탈춤은 원형 보존은 잘 돼있지만 어떻게 현대적인 공감대를 넓히느냐가 숙제입니다.”

그는 본래 ‘논버벌’이 전문이 아니다. 아역배우, 연극배우로 출발한 버벌(verbal) 스타다. ‘남자충동’ 같은 작품은 또 언제 만들 예정이냐고 물었다. 송씨는 “후속 논버벌 작품 구상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며 “정리되는 대로 연극도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논버벌과 연극 외에 뮤지컬에도 독창적인 밝은 눈을 갖고 있다. 브로드웨이에서 화제를 일으켰던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Legally Blonde)’에 선투자를 할 정도다.

“지난 5월 코엑스아티움극장을 오픈, 개관공연 ‘형제는 용감했다’에 이어 ‘젊음의 행진’을 공연하고 있습니다. 11월쯤 ‘금발이 너무해’를 완전히 우리 것으로 만들어 공연할 예정입니다.”

그는 7080향수를 담은 노래들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달고나’를 일본에 라이선스로 수출했고, 최근 막을 내린 ‘형제는 용감했다’는 오리지널로 일본 초청 제의를 받았다. 송씨는 “‘젊음의 행진’도 베이비복스나 2PM의 노래로 바꾸면 동남아 공연도 가능하다”며 새로운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공연과 관련, 그의 샘솟는 아이디어는 끝이 없어 보인다. 대체 그의 목표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했다.

“특별한 목표는 없어요. 하고 싶은 작업을 할 뿐입니다. 작업 그 자체에 꽂혀 있습니다. 한 작품이 무대에 오르면 다른 작업을 시작합니다. 회사가 어떻게 돼야 하는지, 내가 어떻게 돼야 하는지, 그런 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작품만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송씨는 끝으로 번듯한 ‘난타 전용관’을 희망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니컬러스 케이지, 숀 코너리 등 세계적 인사들이 ‘난타’를 봤는데 이제 영화관 지하 소극장이 아니라 번듯한 전용관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정부나 시에서 땅만 준다면 건물은 저희 돈으로 어떻게 해 보겠지만 땅값은 도저히 계산이 안 나오네요.”

송승환씨는…

▲1957년 서울 출생 ▲1965년 KBS 아역배우 데뷔 ▲1976년 휘문고 졸업 ▲1977년 극단 76극장 입단 ▲1989년 극단 환퍼포먼스 창단 ▲1996년 한국외국어대 명예졸업 ▲1996년 ㈜PMC프로덕션 창립 ▲2004년 명지대 뮤지컬공연학과 교수 ▲수상 경력:동아연극상 특별상(극단 광장 ‘학마을 사람들’ 1968년), 백상연기상(극단 실험극장 ‘에쿠우스’ 1982년), 서울연극제 남자연기상(극단 반도 ‘영원한 제국’ 1994년), 동아연극상 작품상(PMC의 ‘남자충동’ 1998년), 한국 뮤지컬대상 특별상 (PMC의 ‘난타’ 1998년)

편집국 부국장 hye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