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와 전체주의 모두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지금, 서양중심주의에서 벗어난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유영모와 함석헌의 씨알사상은 바로 개인주의와 전체주의의 장점들을 통합하고 그 단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이기상 한국외대 철학과 교수)

“일본에서도 새로운 대안사상으로 ‘공공의 철학’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씨알사상을 비롯한 한국의 사상이 일본에 바람을 일으키고, 일본의 대학제도를 포함한 학문구조를 재편할 겁니다. 하지만 이에 앞서 한국의 사상을 일본에 정확하게 전달하는 과제가 선결돼야 합니다.”(오구라 기조 일본 교토대 대학원 인간환경학연구과 교수)

유영모와 함석헌의 사상을 주제로 한국과 일본의 학자 26명이 참여한 가운데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전남 목포시 목포대에서 열린 한일철학포럼. 4박5일 동안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띤 토론을 이어간 포럼에서는 한·일 양국 학자들이 주체적으로 아시아적인 해결책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하이데거 연구자로 유영모의 사상에 천착해 온 이기상 교수는 하이데거와 유영모의 공통점과 차이에 주목하면서 동서통합적인 새로운 차원의 인간상을 제시했다. 하이데거와 유영모가 서양의 과학기술적 세계관과 그 근저에 깔린 형이상학에 문제 있다고 보는 것은 공통되는 반면, 하이데거에게 인간은 ‘세계-안에-있음’, 즉 인간은 이미 만들어진 세계 안에 던져져 있으면서 동시에 또한 거기에서부터 세계를 만들어가는 존재자라면 유영모에게 인간은 ‘사이에-있는-존재’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유영모에 따라 인간을 몸, 마음, 뜻, 얼의 네가지 차원이 관계론적으로 얽혀있는 존재로 풀이한다. 이렇게 사이를 이으며 살고 있는 사이 존재로 인간을 규정하면 감성, 지성, 이성, 영성을 고루 계발시키는 탈근대의 인간상 마련이 가능하다는 것. 이 인간상은 존재하는 모든 것과 사이를 나누며 사는 지구살림지기이자 우주적 생명 공동체의 일원이기도 하다. 나눔과 비움, 섬김과 살림의 가치관도 여기서 나온다.

오구라 기조 교수를 포함한 일본학자들도 씨알사상의 가능성에 동의했다. 하지만 오구라 교수는 한국 사상의 독창성과 보편성을 외국인에게 전달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함석헌의 ‘생각하는 백성’을 일본말로 그대로 번역할 경우 철학적인 의미와 맥락이 전혀 다른 것으로 바뀐다는 것. 함석헌과 우치무라 간조 같은 사상가의 비교연구도 필요하다.

오구라 교수는 “일본에도 한류가 거세나 아직도 한국인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에 대한 체계적이고 정확한 이해는 거의 없는 실정”이라며 “한국의 사상이 제대로 연구돼 일본에 전해지면 아직도 서양 중심에 머물러 있는 일본의 대학과 학문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