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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본선무대에 가서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지금이라도 기꺼이 대표팀 감독 자리를 내놓겠다.”

한국축구의 월드컵 7회 연속 본선 무대 진출을 이끈 감독에 대한 예의는 아니었지만 기자는 축하 인사 대신 ‘허 감독은 예선용이었고, 본선은 외국인 감독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지난 7일 새벽(한국시간) 이집트와의 경기를 2-0으로 승리함으로써 2010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대회 본선 진출을 일찍이 확정지은 후 가진 1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가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최종예선 6차전은 긴장감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었다. 경기를 마치고 내외신기자들과의 인터뷰를 가진 후 밤늦게 기자와 따로 자리한 허정무 감독은 1년6개월여의 긴장감이 잠시 풀어진 듯 오랜만에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런 그에게 만나자마자 축하 인사 대신 또다시 ‘자리’얘기였으니 몹시 기분 나빴을 것 같다. 그러나 허정무 감독은 ‘그럴 수도 있다’며 태연하게, 그리고 ‘이제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투로 받아들였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대주의’때문인지, 아니면 히딩크에 대한 향수 때문이지는 모르겠지만 외국인에 대해서는 무조적 관대함이 있는 같다. 물론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길가다가도 외국인만 보면 필요 이상으로 친절하지 않아요? 물론 축구계에서는 남 잘되는 것을 그냥 보지 못하는 속물 근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라며 말을 끊었다.

다시 ‘현 대표팀 감독으로서가 아닌 축구인 입장에서 내·외국인 감독에 대한 생각을 얘기해 줄 수는 없느냐’고 했다.

그는 “내·외국인을 가리지 말고, 지금 상황에서 대표팀을 가장 잘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다. 그리고 외국인 감독의 경우도 막연하게 ‘외국인 감독’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모리뉴면 모리뉴, 아니면 퍼거슨 감독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막연히 외국인 감독이 더 낫다든지, 외국인 감독이 맡아야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식의 얘기에는 절대 공감할 수 없다”고 단호한 입장이다.

허 감독은 한국축구의 수준과 월드컵 목표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그는 “더 이상 히딩크의 4강 얘기는 하지 말자”면서 “2002한·일월드컵에서는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의 최선을 다해 뛰었고, 여기에 운도 따라줬다. 매번 우리에게 운이 따라 줄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우리는 2002월드컵을 빼놓고는 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른 적이 없다. 특히 유럽팀과의 조별 예선 경기에서는 단 한 차례도 승리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 남아공월드컵에서는 16강에 오르는 것이 1차적인 목표이고, 이후 운이 따라준다면 4강 신화 재현도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아무래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을 치르면서 마음 고생이 심했던 것 같다. 언제가 힘들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치른 원정 경기가 최대 고비였다고 한다. 두 차례 맞붙은 북한과의 경기라고 얘기할 줄 알았는데 빗나갔다. 그는 “사우디와의 경기가 월드컵 최종 예선 분수령이었다. 사우디전을 이겼기에 사실상 본선 진출을 확신할 수 있었다. 만약 사우디전을 실패했다면 이란과의 마지막 경기까지 경우의 수를 따져가면서 본선 진출 여부 때문에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북한과의 경기는 오히려 맘 편히 치렀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예선전 기간동안의 일부 팬들과 축구인들에 대한 섭섭함도 털어 놓았다.

“우리 축구팬들은 한 경기 결과에 따라 대표팀과 감독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다. 목표는 최종 예선을 통과, 본선 무대에 진출하는 것이고, 다음에는 본선에서 조별리그를 통과(16강)하는 것이다. 특히 축구를 매번 승리하고 경기를 잘할 수 있는 팀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목표는 승리하는 것이지만 질 수도 있고,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이 축구다.”

그래서 북한과의 최종 예선 첫경기에서 비기고, 연달아 무승부 경기를 했을 때 허 감독의 이름을 빗대어 ‘허무 축구’라며 감독 경질설까지도 나왔었는데 그때는 어떤 마음이었느냐고 물었다.

“그때는 정말 답답하고, 서운했다. 그러나 마음을 비웠다. 그리고 남은 예선전을 통해 능력이 없다고 판명되면 물러나려고 했다. 그러니 오히려 담담해지더라. 그러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에게는 ‘우리의 갈 길만을 가면 된다’고 했다. ”

그러고 보니 그의 휴대전화와 집전화 컬러링(통화 연결음)이 ‘마이 웨이(My Way)’였다는 생각이 스쳤다.

허 감독의 지도 스타일이 변했다고들 한다. 일부에서는 ‘쇼’를 한다고 하기도 하고 보여 주려고만 한다는 등 확실히(?) 달라졌다고들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부드러운 소통의 리더십’이라고도 한다.

“세계에서 완벽한 팀은 없는 법이다. 그리고 사람은 변해야 한다. 그러나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예전에는 내가 전달하는 것에 문제가 있지 않았나 싶다. 선수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노력하는 것 같은 거다. 예전에는 직설적이었다.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런 것을 이번 대표팀을 맡으면서 느끼고 현실화한 것이다. 그래서 전달 방법을 좀 바꾼 것뿐이다. 그래도 선수들이 나를 굉장히 어려워한다. 허정무가 물러졌다는 얘기는 잘못된 얘기고, 팀 분위기를 몰라서 하는 얘기다. 그러나 전달 방법을 바꾼 것은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소위 이동국, 이천수, 조재진, 안정환 등 스타플레이어들의 대표팀 복귀에 팬들의 관심이 많았고, 허 감독은 월드컵예선기간에 한국축구의 세대교체를 시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으로도 스타들의 복귀는 없는 것인가.

“한국축구는 2002년월드컵 이후 정체됐다. 그러다 보니 썩었다. 축구팬들도 동감하실 거다. 2002년월드컵에, 그리고 다시 2006년 독일월드컵까지 뛰었던 선수들이 기량 발전없이 그대로 대표팀에서 뛴다는 것은 한국축구가 잘못되고 있다는 증거다. 아직도 스타라는 사실만으로 대표선수가 되고 경기에 뛰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고 했다.

“이동국은 팀에서 골을 넣는 등 재기한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에는 몸놀림이 아직 아니다.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 조재진도 마찬가지다. 조재진에게 골을 어시스트해 주는 선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지 아직은 아니다. 절대 그들의 기량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직접 얘기했다. 대표팀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이근호나 박주영보다 훨씬 나은 기량을 보여줘야 한다고. 김남일에게도 직접 얘기했다.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이런 원칙은 본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본선무대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이제 본선무대가 정확히 1년 남았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하는데 어떤 계획을 갖고 있을까.

그는 내년 3, 4월쯤 남아프리카공화국 현지 훈련과 평가전만큼은 꼭 하고 싶다고 강조한다. 대표 선수 소집에 있어 프로축구단의 협조가 필요한 부분이다.

허 감독은 “이번 대회는 생소한 아프리카 대륙에서, 거기에 계절과 기후도 정반대인 상황이다. 상대가 어떤 팀이든 월드컵이 열리는 남아공에서 대회를 2, 3개월 앞둔 시점에서 경기장 잔디를 밟아 본다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다. 상대가 어떤 팀이든 상관없다. 남아공에서 경기를 뛰어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내 프로구단과 감독들의 협조를 간곡히 부탁했다.

그는 지난 2007년 12월 국가대표팀 감독을 다시 맡으면서 가진 인터뷰에서 “2010월드컵 본선 진출에 나의 축구인생을 걸겠다”고 말했었다. 지금은 어떤 심정일까.

“물론 내 인생 자체가 축구로 이뤄졌다. 축구로써 팬들로부터 사랑 받고 있다. 인생의 모든 것을 걸 만큼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전쟁이라고들 표현하지 않는가. 월드컵은 모든 국민들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고 슬픔을 안겨주기도 하는 엄청난 이벤트다. 국민의 정서를 좌우하기도 한다. 그런 일을 하는데 어떻게 ‘인생’을 걸지 않을 수 있겠는가.”

kj59@munhwa.com

■ 허정무 감독은…

▲1955년 전남 진도 출생 ▲1968년 영등포공업고 졸업 - 연세대 - 수원대 대학원 ▲1972년 청소년대표 ▲1974~1986년 국가대표 ▲1978년 한국전력 ▲1978~1980년 해병대 복무 ▲1980~1983년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 ▲1984~1986 프로축구 현대 ▲1986~1986년 월드컵 국가대표 ▲1989~1990년 월드컵대표팀 트레이너 ▲1993~1995년 포항아톰즈 감독 ▲1994~1994년 국가대표팀 코치 ▲1995년 7월~1998년 9월 전남 드래곤즈 감독 ▲2000년 올림픽대표팀 감독 ▲2002년 KBS 축구해설위원 ▲2004년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2005~2007년 12월 전남 드래곤즈 감독 ▲2007년 12월~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 ▲부인 최미나씨와 2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