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사진=심만수기자

꼭 1년만이다. 지난해 6월 인터뷰 당시보다 훨씬 밝고 활기가 넘쳐 보였다. 오후 시간이었지만 별로 피곤해 보이지 않고 생기가 돈다. 1년전 오세훈(48) 서울시장은 거의 매일 반나절 이상을 회의로 보낸다고 했다. 시정을 미주알고주알 다 챙기기 때문에 오죽하면 “죽어서 집에 들어갔다가 살아서 출근하는 느낌”이라고 했을 정도다. 몸이 괴롭다고까지 하소연했던 그다. 여전히 그럴까.

― 요즘도 모든 걸 다 직접 챙길 정도로 바쁘신가요.

“그런 단계는 지나갔고요.” 3년차 관록일까. 여유가 느껴졌다. “사실 최고경영자(CEO)가 디테일한 것까지 다 신경 쓰는 조직은 좋은 게 아니죠. 3년차에 접어들어서는 시정 목표와 비전을 설명해주고, 열정만 불어넣어주면 알아서 돌아가는 그런 조직이 거의 됐어요. 지금은 큰 틀에서만 챙기고, 퀄리티 컨트롤만 해주면 되는 단계까지는 온 것 같아요.”

오 시장의 말이 맞다면 엄청난 변화다. 그것도 불과 3년 사이에. 미심쩍었다.

― 서울시 조직이 취임하실 때 구상했던 궤도에 올랐다는 말인가요.

“감히 그렇게 자평합니다. 처음에는 공무원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지 못했었죠. 새로운 시도에 대해 신중하고 굉장히 보수적인 조직이잖아요. 바로 그 점에 굉장히 큰 변화가 있었어요.” 이 대목에 대해 한참을 설명했다. 그는 서울시가 시행중인 장기전세주택(시프트)제를 예로 들며 “아이디어만 제공했는데 주무부서인 주택국이 자기들끼리 신이 나 거의 종교같이 된 것 같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이젠 정말 실·국·본부별로 새로운 시도를 하겠다는 게 너무 많아서…. 새로운 걸 하면 돈도 많이 들어가고 그만큼 위험부담도 늘어나고….”

너무 자화자찬한다 싶었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최근 문화일보가 비판적으로 지적했던 ‘창의 시정’ 기사에 대해 거론했다.(문화일보 4월17일자 1면 참조) 창의 시정은 오 시장 그 자체라고 할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 있는 시정 철학이다.

“굉장히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런 식의 관심 표명이 우리 직원들을 긴장도 시키고. 그렇듯 설익은 아이디어도 막 내놓는 단계까지 온 거예요. 경쟁하는 과정에서는 설익은 아이디어도 나오고, 무리한 아이디어도 나오고, 돈 드는 아이디어도 나와 걸러지면서 제도에 편입돼 성과를 내는 겁니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하던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아이디어가 12만개인가 나왔어요.”

이 정도 자신감이면 철학이 아니라 신앙에 가깝다.

― 변화 요인을 뭐라고 봅니까.

“‘세계 최고가 되고 싶다면 1등인 척이라도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하마드 알리가 그런 얘기를 했죠. 제가 평소에 창의적인 업무 태도를 체질화하겠다는 얘기를 많이 해왔어요. 유전자(DNA)화하겠다. 그게 처음에는 억지로 하는 거죠. 그러다가 승진시스템, 인센티브시스템 말하자면 성과평가시스템과 연계가 돼서 포인트로 쌓이고 승진으로 연결되는 겁니다.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조직의 풍토가 되는 거죠.” 너무 자기 말만 한다 싶었던지 그는 근거를 제시했다. “그런 평가를 제가 하는 게 아니라 서울시 조직을 20~30년 이상 지켜봐 오셨던 간부들한테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옵니다. 바뀐 풍토가 구성원 개개인의 체질 변화까지 이어지면 창의 시정은 성공단계에 들어가는 거 아니냐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인터뷰가 이 상태로 계속되다간 일방적 홍보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오 시장이 업적으로 생각하는 ‘청렴도 1위’에 대한 약점을 공세적으로 묻기로 했다.

― 최근 일선 구청 공무원들이 벌인 공금 횡령 사건이 서울시와 별개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요. 저희한테 지도, 감독 권한이 있으니까요.” 답변이 의외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곧 반론이 나왔다. “한가지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제가 취임한 이후에 서울시에서는 적어도 그러한 불명예스러운 일이 1건도 없었습니다. 터진 문제들은 과거의 것이 밝혀진 거예요. 사실 어떤 면에서 꽤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이제라도 그것을 고쳐놓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게. 이후에 정밀 검증을 했어요. 죽을 각오로 검증을 했어요.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느냐면 이미 서울시가 공직 청렴도 평가 1위를 했지, 그런 일은 불거졌지.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했어요. 정말 이 잡듯이 뒤졌어요. 불행 중 다행으로 거의 나오지 않았어요. 저희도 놀랐어요. 무지하게 나올 줄 알았거든요. 사실 시작하면서, 나오는 대로 맞고 가자 이런 각오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는 많이 나오지 않아서 정말 안도했습니다.”

오 시장은 취임후 이명박 서울시장의 그늘에 가려 스스로 업적주의에 빠지지 말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최근 서울 시내 곳곳에는 각종 공사와 사업을 알리는 홍보물이 넘친다. 달라진 걸까.

“제가 많이 듣는 말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이 왜 이렇게 홍보가 빈약하냐. 하는 일은 무지 많은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홍보를 못하느냐, 그러십니다. 하지만 홍보의 요체는 한두개로 승부하는 데 있어요. 여러개 하면 절대 성공 못합니다.” 마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청계천, 버스중앙차로제를 염두에 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울시라고 하는 거대조직, 한 나라에 버금가는 도시가 어떻게 한두개 사업으로 승부를 합니까. 바람직하지 않죠. 그래서 홍보파트를 다그치지 않아요. 굳이, 홍보에 실패했다고 얘기한 적도 없어요. 한두가지로 승부한다면 그렇게 승부할 수 있는 게 얼마든지 있어요.”

‘이명박 콤플렉스’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걸까. 오 시장은 1년전 기자와 만났을 때 “저만한 CEO가 없다고 생각한다” “서울시를 새조직으로 못만들면 안나오겠다” “재선할 만하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며 재선에 대한 강력한 의욕을 보였다. 지금은 어떨까.

― 차기 서울시장 경쟁자가 여러명 되는 것 같은데 공천 가능성, 당선 가능성을 어떻게 보시나요.

“열심히 해야죠. 그 말씀밖에 드릴 수 없고요. 성과로 승부하겠습니다. 국민이 보기에 성과가 없다면 아무리 제가 10년짜리 프로젝트를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4년내에 평가받게 되는 시스템 안에서 아무런 성과가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성과가 있다면 당내 경선에서 유리한 위치에 갈 것이고, 없으면 불리할 것이고, 성과가 없으면 물러나야 할 것이고 저는 그렇게 봅니다.”

1년전에 비해 상당히 달라진 말투다. 자신감의 표현일까. 속내가 궁금했다.

― 경선까지 간다고 보십니까.

“해야죠. 하고 싶은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답변은 의외로 짧고 강했다. 내친 김에 좀 더 나가보기로 했다.

― 사실 오 시장에 대한 평가는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오 시장의 정치적 미래를 염두에 둔 사람들은 오 시장이 지금까지 뭐했느냐는 비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 제 책임이죠.” 일단 상대 의견을 수용하고 반론을 펴는 그의 어법은 계속됐다.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하드웨어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가 합니다. 공무원들 체질을 바꾸는 작업, 이렇게 단시간 동안 조직의 체질을 바꿔온 조직의 장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게 알려지지 않은 것도 제 탓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설명이 계속됐다. “예를 들면 민선 4기의 최고 히트 작품이라고 하는 120(다산콜)시스템, 또 청렴도 1위 같은 것의 가치를 어떻게 보시는지 모르겠지만. 글쎄요. 자화자찬하기에 낯 간지러워서 말은 안하지만 국가 발전에 그것 이상의 기여가 있을까요.” 목소리가 가라앉았지만 차분했다. “하드웨어도 있지만, 그런 소프트웨어의 변화, 이게 서울시를 서울시답게 하는, 대한민국 대표도시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하는 그런 자신감을 갖고 있어요, 자연스럽게 알려질 것입니다.”

― 결국 서울시장을 뛰어넘는 오세훈이 되려면 서울시정을 최우선해야 한다는 뜻인가요.

“그럼요.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애국이고, 기여인 것이죠. 내셔널 피겨(national figure)로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영역 밖의 코멘트를 한다든가, 이렇게 하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안하는 거죠.” 평소 그는 정치적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일이 거의 없다. 인터뷰전 오 시장의 측근들은 가급적 정치적 질문은 하지 말아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대권 주자로서 이미지를 정치적 행위를 통해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의 ‘장기 승부론’은 계속됐다. “조용히 만들어가는 변화가 몇 년 뒤 굉장히 의미있는 시도였다는 평가를 받고 싶은 것이지, 그때그때마다 전형적인 정치인의 자세로 변화를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 평가에 인색한 부분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란 뜻인가요.

“10년뒤, 20년뒤 혹은 사후에 평가받는 일로 승부하는 리더가 없으면 ‘좋은 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없죠. 모든 정치인이 그렇게만 승부하려고 든다면 그 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되겠습니까. 정치인으로서 유혹을 많이 느끼죠.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계속 누르면서 일을 하고 있다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차기 서울시장 선거를 1년 앞두고 다시 만난 오 시장. 그는 장기 승부를 꿈꾸고 있는 듯했다.

인터뷰 = 최영범 정치부장 youngb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