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혼란으로 관광대국 이미지가 무너진 태국, 경제개혁 성과에도 불구하고 권력투쟁이 극심한 인도네시아, 신분 및 종교갈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인도 등 개발독재 혹은 장기집권 체제를 벗어난 아시아의 민주주의가 최근들어 몸살을 앓고 있다.

민주주의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할 민주정치체제가 취약한 데다 빈민·농민 등 최하층 계급의 정치적 성장이 새로운 ‘피플 파워’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 민주적 절차 무산, 사회적 갈등의 연속 = 태국은 지난해 총선으로 두 차례나 내각을 구성했지만 반탁신시위대가 태국국제공항을 점거하는 등의 격렬한 투쟁으로 무너졌다. 이달에는 반대로 친탁신시위대를 향해 군이 출동해 유혈사태를 겪어야 했다.

표면적으로는 안정을 찾았다지만 17일 방콕에서 반탁신단체 대표가 총격을 받을 정도로 불안정하다.

인도와 인도네시아 역시 마찬가지다. 인도의 맘모한 싱 총리는 민주적 절차를 밟아 집권했지만 뭄바이 테러를 막지 못한 데다 신속한 테러진압에 실패해 독자적인 재집권이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 사이에 힌두민족주의를 내세운 야당이 급속히 성장했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허약한 자원국에 불과하던 인도네시아에서 성공적인 경제개혁을 이뤄냈다. HSBC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3.8%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전 대통령과 32년간 장기집권한 고 수하트로 전 대통령 기반의 골카르당 등 야당들의 끈질긴 도전으로 다른 당과의 연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피플 파워’= 이들 국가의 갈등요소는 정치체제가 민주화되면서 ‘구체적인 힘’을 행사해본 ‘피플 파워’와 이에 기댄 정치권력이다. 태국의 ‘피플 파워’는 도시중산층과 지배층 엘리트(반탁신)대 도시빈민 및 농민(친탁신)으로 나뉘어 격렬한 대립을 거듭하고 있다. ‘대규모 시위→정부 전복’의 비민주적인 공식을 체감한 ‘피플 파워’는 서로를 답습하고 있다.

인도의 상황도 비슷하다. 불가촉 천민출신인 마야와티 쿠마리 우타르프라데시 주총리는 부패와 개인우상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전체 인도 인구의 15%인 약 1억7000만명에 달하는 불가촉 천민의 ‘피플 파워’가 정치적 자산이다.

인도네시아는 총선날인 지난 9일 파푸아주 자야푸라에서 분리주의자들의 테러가 발생했다. 골카르당 등 야당세력은 끊임없이 ‘이슬람 원칙주의’를 내세우거나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한 포퓰리즘으로 집권당을 흔들고 있다. 태국 출라롱콘 국립대의 티티난 퐁시디락(정치학) 교수는 AP통신 등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아시아의 정치체제는 민주화 초기에 불과해 각종 정치적, 사회적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며 “태국뿐 아니라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민주주의 구축과정에서 극심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겪었거나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인표기자 lip@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