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굳은 표정의 건호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1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에서 조사를 받은 뒤 이날 밤늦게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신창섭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7년 7월1일 미국 시애틀을 방문했을 당시 최소 16시간 동안 공식 일정이 비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이 통상 분 단위로 빡빡하게 짜여지는 점을 감안할 때 이례적인 일이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부부가 이날 미국 유학중이던 아들 건호씨를 만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100만달러 중 일부 또는 전부를 유학비나 생활비로 전달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지우지 않고 있다.

물론 노 전대통령측은 “숨길 이유가 없다”며 만남 자체를 줄곧 부인하고 있다.

지난 2007년 6월30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참석차 과테말라 순방길에 오른 노 전 대통령 부부는 7월1일 경유지인 미국 시애틀에서 1박2일을 머물렀다.

이날 노 전 대통령의 일정표상 마지막 행사는 오후 4시 모 호텔에서의 동포간담회. 1시간여의 간담회 이후 다음날 오전 9시50분 시애틀 출발 전까지 공식 행사는 없었다.

간담회를 마치고 최소 16시간의 일정이 없었던 셈이다. 순방에 동행했던 청와대 기자단은 물론, 노 전 대통령 측근들에게조차 일정은 비공개였다.

천호선 당시 대변인은 13일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비공식 일정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진 정윤재 전 의전비서관은 수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받지 않았다. 천 대변인은 “은밀한 일정은 의전비서관도 모를 수 있다”고 전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부부가 이 비공식 일정 중 건호씨를 만나 박 회장에게서 받은 달러화를 전달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박 회장은 대통령 순방 전인 6월27, 28일 양일간 130여명의 명의로 급하게 환전한 100만달러를 출국일(30일) 하루 전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통해 노 전 대통령측에게 전달했다.

노 전 대통령이 출국 전까지 돈이 급하게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미국 유학중이던 건호씨와 연관이 있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검찰은 12일 건호씨와 11일 권양숙 여사에 대한 소환 조사에서 이 부분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재인 전 비서실장은 이에 대해 “(미국에서) 건호씨나 가족을 만난 것은 사실무근으로 알고 있다”고 부인했다.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노 전 대통령측 인사도 “대통령의 비공식 일정도 경호실이 관리하기 때문에 나중에 모두 노출된다”며 “공개되면 파문이 더 커질 건호씨와의 만남을 굳이 숨길 이유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권로미기자 ro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