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역사화해를 위해 전세계 역사관련 비정부기구(NGO)가 나선다. 동아시아의 역사 갈등을 풀기 위한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세계 NGO 역사포럼’(대표 박원철, 이하 ‘세계 NGO 역사포럼’)이 4월1일 서울 중구 한국관광공사 TIC상영관에서 창립식을 갖고 출범한다.

‘세계 NGO 역사포럼’은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용덕)이 지난 2007년과 2008년에 주최한 1, 2회 ‘역사 NGO 세계대회’ 조직위원회 및 운영위원회 소속 시민단체가 주축이 돼 만들어지는 전세계의 시민사회 연대협의체. 동아시아역사시민네트워크 등 국내 21개 단체와 일본의 재일한국인문제연구소 등 해외 9개 단체가 참여할 예정이다.

‘세계 NGO 역사포럼’은 매년(올해의 경우 8월) 개최될 ‘역사 NGO 세계대회’의 주관단체로서 이 대회를 이끌어나가게 되며 정례포럼을 통한 어젠다 공유, 한국·중국·일본 역사교과서 문제 및 역사 인식과 교육에 관련된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나갈 계획이다.

무엇보다 정부 또는 학계 차원에서 동아시아의 역사갈등을 풀어가는 과제가 여러 가지 한계가 있다는 측면에서 시민사회를 기반으로 한 ‘세계 NGO 역사포럼’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다. 포럼은 이날 창립식과 함께 창립기념 국제 심포지엄도 개최한다. ‘동아시아 역사화해와 대안모색’이라는 주제하에 펼쳐지는 심포지엄에선 일본의 친한파 언론인인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아사히(朝日)신문 전 논설주간과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에드워드 리드 미국 아시아재단 한국대표, 알렉산더 페트로브 러시아 사회과학원 연구원, 레베카 엠부 드랜시 중원대 교수 등이 주제 강연자로 나선다. 이 가운데 주요 발표문의 요지를 소개한다.

◆1998년 한·일공동선언의 정신을 되살리자 = 와카미야 전 논설주간은 2005년 3월 아사히 신문에 ‘독도를 한국에 주자’라는 내용의 칼럼을 게재, 한국에서 크게 주목을 받으면서 일본에선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인물. 그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한국과 일본의 화해를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주제 강연할 예정이다.

미리 배포된 강연문에서 와카미야 전 논설주간은 1990년대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이 일련의 명확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를 계속했다고 밝혔다. 특히 1995년의 ‘무라야마(村山) 담화’가 그 결정판으로, 이 같은 사죄 표명이 가능했던 것은 한국의 민주화 흐름과 이에 맞춰 일본 내에서도 과거의 침략이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이 널리 자리잡게 된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와 일본에서 이 같은 흐름을 무너뜨리는 일들이 줄을 이었는데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만든 후소샤판 역사교과서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는 1990년대에 계속된 사죄에 대한 ‘반동’으로 일본 우파 내에 축적된 ‘사죄 외교’에 대한 굴욕감이 분출한 데다 일본의 거품경제가 붕괴돼 경기 정체국면이 지속됨으로써 일본 전체가 자신감 상실에 빠진 탓이기도 하다는 것. 와카미야 전 논설주간은 “1998년의 ‘한·일공동선언’의 정신으로 양국이 되돌아가야 한다”며 “공동선언에서 일본측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을 표명했고, 한국측은 이를 평가해 ‘역사를 극복하는’ 일과 ‘화해’에 기초한 관계 형성의 의지를 표명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일본이 과거의 정당화에 연연해하는 한, 아시아는 물론 세계에서도 존경을 받지 못한다”며 “그러나 한국 또한 과거의 피해에 연연해 가해자를 계속 비난만 한다면 아시아와 세계로부터 존경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일 양국이 관용과 도량을 겨룰 때 새로운 양국 관계가 열릴 것으로 전망했다.

◆민간차원의 역사갈등 해결 노력 필요 = 이만열 교수는 ‘2009년 동아시아 국제정세와 역사 갈등, 어떻게 풀어야 하나’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동아시아의 결속과 연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 대해 “19세기 이래 횡행하던 제국주의의 부정적인 영향들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강조한다.

이 교수는 미리 배포된 강연문에서 한·중·일의 역사 갈등, 특히 한국사에 대한 일본과 중국의 왜곡 실상을 구체적으로 열거했다. 일본의 임나일본부설과 일선동조(日鮮同祖)론을 비롯한 한국고대사의 왜곡 사례는 물론 한국중세사와 근대사에 대한 왜곡도 심각함을 지적했다. 또한 “중국의 한국사 왜곡은 국가정책을 통해 심화됐으며 관변학자들을 통해 확산됐다”고 밝힌 이 교수는 “중국이 주장하는 ‘고구려사=중국사’는 한·중 양국이 그 동안 어느 역사책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아울러 한국 역시 이웃 나라에 대한 역사서술에서 갈등요인을 일으킬 만한 요소가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리드 대표와 페트로브 연구원, 드랜시 교수 등은 ‘외부의 시선에서 동아시아 역사갈등을 바라본다’는 주제하에 각자의 입장을 개진하면서 동아시아 각국이 역사관련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를 토론과 협력으로 풀어나갈 것을 주문했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