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를 알리려고 시작했는데 용서로 끝냈다”

차인표씨의 ‘잘가요, 언덕’은 구상부터 출간까지 10년이 걸렸다.

그는 일본 강점기 위안부로 끌려간 뒤 반세기 넘도록 조국이 해방된 사실을 모른채 캄보디아에서 생활하다 발견돼 1997년 고국을 찾게 된 ‘훈’ 할머니의 사연을 언론을 통해 접하면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이후 구상과 집필, 원고 유실, 재집필, 수정을 거쳐 ‘잘가요, 언덕’이 탄생했다.소설의 무대는 1930년대 백두산 자락의 호랑이 마을. ‘잘가요, 언덕’이란 제목은 작품 속 지명에서 따왔다.

차씨는 엄마의 목숨을 앗아간 호랑이를 잡아 복수하려는 소년포수 용이, 촌장 댁 손녀딸 순이, 그리고 일본군 장교 가즈오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역사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용서와 화해의 공간으로 이끌어간다.

마을 위를 날아다니는 제비의 눈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전지적 작가시점인데다, 경어체의 문장이어서 책의 내용이 곧바로 영상으로 만들어질듯한 느낌을 준다. 저자가 ‘배우’라는 전문영역에서 터득한 스토리텔링의 핵심요소를 제대로 글쓰기에 반영한 덕분일 것이다. 사실적인 묘사와 곳곳에 배치된 감정이입의 장치들이 만만찮은 글솜씨를 보여준다.

차씨는 소설 후기에서 집필동기를 이렇게 전했다. “십여 년 전 이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할 무렵, 저는 우리 할머니들에게 몹쓸 짓을 한 파렴치한 사람들의 범죄에 대해 널리 알려, 죄인들을 골탕 먹여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 이 글을 쓰면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할머니들이 그들을 용서해 주시는 모습을 보고 싶어진 것입니다. “그래, 용서할게. 앞으로 다시는 그 누구에게도 그런 짓을 하지 말거라.”

실제의 ‘훈’ 할머니는 당시 ‘이남이’라는 본명을 되찾았고, 1998년 5월 영구귀국한 뒤 경북 경산 조카 집에서 4개월 동안 머물다 그해 9월 캄보디아로 되돌아 갔다. 이후 신병치료차 몇 차례 한국을 방문했으며 2001년 77세로 캄보디아에서 한 많은 삶을 마감했다.

오승훈기자 oshun@munhwa.com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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