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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벌써 몇 년. 오랜만에 그녀를 만나려니 온종일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하기가 힘든 하루였다. 그동안 촬영 때문에 그녀를 만날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바쁜 그녀의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 아쉽게도 번번이 그 기회를 놓쳤었다. 그래서 그런지 몇 주전부터 이번에는 진짜로 만날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 그녀를 어제 드디어 만났다. 수많은 스태프들 사이로 그녀에게 다가갔었는데, 하마터면 그녀를 놓칠 뻔했다. 스타일도 많이 달라졌지만 더 이상 내가 알고 있던 그 소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시간은 나보다도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지나간 듯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기억도 잘나지 않을 만큼 옛날의 일이 되어 버렸지만, 그때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분명 ‘소녀’였다. 그때 참 신기했던 것은 그런 작은 소녀와 함께 촬영을 하는 내내 카메라 앞의 그녀는 소녀라기보다는 오히려 카리스마 넘치는 큰 배우로 보였었다. 그렇지만 촬영이 끝나면 항상 다시 소녀로 돌아가는 그녀였었다.

세상의 누구보다 깊고 크고 짙은 눈동자를 가진 소녀였고, 그 눈동자의 이미지만은 어떻게든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사진으로 남기고 싶게 만든 배우였었다.

내가 그런 소녀 곁을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었다. 그녀는 더 이상 내가 기억하고 있던 소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문근영’. 그녀는 그렇게 어른이 다 되어 나의 카메라 앞에 돌아온 것이다. 수많은 스타들이 나의 카메라를 지나갔지만 이렇게 다시 돌아온 배우는 처음이었다. 못 알아 볼만큼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온 배우는 여태 한 명도 없었는데…. 신기하고 다행스럽게도 내가 그녀의 손을 잡는 순간 오래 전 그 소녀에게서 느꼈던 그 마음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카리스마 뒤에 숨어있는 문근영만의 ‘순수’ 그 자체였다.

아마도 문근영이 가진 한결같은 매력은 바로 카메라 앞에서 보여주는 카리스마 속에 가려진 ‘순수함’이 아닐까? 그녀의 체온으로부터 느껴지는 진정한 순수는 어른이 된 지금도 내내 한결같을 수밖에 없다.

촬영 때면 늘 함께 오셔서 독서에 열중이시던 그녀 할머니의 안부를 묻자, 요즘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신다며…,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가족 같이 따뜻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 또한 그녀의 순수함 때문이 아닐까?

그녀에게서 먼 훗날의 우리 사회를 위해 배우 그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고 싶은 것은, 실없이 큰 부담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분명 그녀라면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스튜디오 문을 나서면서 돌아서서 그녀가 잊지 않고 나에게 한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할머니와 어머니께 안부 전할게요~.”

이제 휴학을 마감하고 다시 학교로 컴백하는 그녀를 다시 만나려면, 아마도 꽤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하겠지만, 그때는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든지 그녀의 순수한 영혼이 성숙되는 과정이리라 생각되며 벌써 그날이 그리워진다.

iconstudio@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