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사진=신창섭기자

2월 임시국회가 시작되면서 김형오 국회의장의 고민과 부담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 연말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쟁점법안들은 물론 국회 폭력사태에 대한 제도적 방지 장치 마련 등 현안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말 한나라당의 강력한 직권상정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일단 여야간 충돌은 피했지만 이번 국회에서도 현안 법안들을 통과시키지 못할 경우 국민적 비난여론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김 의장은 “설을 쇠고 난 뒤 국회의원이나 국민들이 모두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라며 “국회안에서 불법점거나 폭력이 일어나서도 안되고 일어나도록 더이상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내비췄다. 이번 임시국회를 앞두고 1월3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국회 의장실에서 김 의장을 만나 2월 국회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인터뷰=이현종 정치부장]

―경제위기 속에서 2월 국회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큽니다. 국운(國運)이 걸려 있다고도 하는데.

“사실상 2009년도 첫 국회입니다. 국민에게 2009년에 국회 모습을 처음으로 보여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합니다. 특히 지난해, 올해 초에 결코 보여드려선 안될 모습을 보여드렸기 때문에 반성과 새로 태어난다는 입장까지 같이 갖고 있어야 됩니다. 이번 국회는 국민을 위한 국회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2월 국회에서 정치권이 가장 중점을 둬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번에 중동 3개국을 다녀봤지만 세계경제가 굉장히 안좋습니다. 산유국도 이미 긴장상태, 경계태세에 있습니다. 특히 금융이 문제이기 때문에 바짝 긴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한민국 국회가 세계경제의 치외법권 지역일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는 국회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당장 일자리 창출, 실업문제가 심각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다수당의 강행처리, 소수당의 강력반발 등 18대 국회 들어 여야간 격돌이 심화되고 양상도 격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높습니다.

“다시는 폭력사태가 없어야 합니다. 폭력사태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또다시 그런 모습 보이면 국민들이 국회를 해산하라고 할 것입니다. 국민들이 들고 일어날 것입니다. 설을 쇠고 난 뒤에 국회의원이나 국민이나 다 같은 걸 느꼈기 때문에 국회 안에서 불법점거나 폭력이 일어나서도 안되고 일어나도록 방치하지도 않겠습니다.”

―여야 정치권에서 국회폭력방지를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국회폭력이 반복되는 원인과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얘기를 하자면 지난번에 당직자, 보좌진 이런 사람들이 로텐더홀을 점거하지 않았습니까. 숫자가 400~500명입니다. 국회의원들이 80여명. 민노당까지 합치면 90여명 가까운 국회의원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동원 가능한 경위가 65명입니다. 경위를 보좌할 수 있는 방호까지 합해봐야 130명입니다. 그러니까 불법점거를 막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경위를 좀 늘려야 겠습니다. 반성하지 않고 똑같은 사태가 난다면 불쌍한 건 국회 경위들입니다. 끌어내야 될 사람이 끌려나가고 있습니다. 세상에 어느 나라에서 폭력이 국회의사당 내에서 일어납니까. 거기에 보좌진, 당원이 가담하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연말연시 아픔을 딛고 성숙한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드려야 합니다.”

―한나라당은 국회폭력방지특별법 제정을, 민주당은 직권상정 요건 강화, 선진당은 폭력의원 소속정당의 보조금을 삭감하고 피선거권 제한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나는 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연말연시 사태에 대한 나름대로의 반성이요 해법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반성하는 차원에서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한번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답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의장실을 또 점거당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의장실을 점거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한나라당에 좀 서운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의장실이 불법점거 당했으면 한나라당은 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청만할 게 아니라 의장실에 와서 불법점거한 민주당 의원들에게 빨리 나가라고 말이라도 해야하지 않습니까. 국회의장이 민주당 의원들이 점거하고 있는데 와서 삿대질하고 싸울 순 없지 않습니까.”

―국회제도개선위원회에서 상설국회, 윤리위강화 등 개선안을 발표했습니다. 이제 법제화 문제가 남았는데 향후 계획은.

“국회법은 운영위를 거쳐서 본회의에서 처리해야 되는데, 운영위에서 빠른 시일내 이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 해줘야 합니다. 국회폭력방지법, 직권상정 요건강화도 논의해야겠지만 이번 기회에 정말 국회 운영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윤리규정도 제대로 없어서 우리는 고작 한페이지 짜리입니다. 미국 윤리규정은 책 한권이 될만큼 양도 많고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어요.”

―필수법안 처리가 안될 경우 직권상정도 염두에 두고 계십니까.

“지난번에 쟁점법안이 27개 빼놓고는 거의 처리됐습니다. 쟁점법안이라고 해서 뒤로 밀렸다기보다는 충분한 숙고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뒤로 밀렸다고 봅니다. 국회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듀 프로세스(due process)’입니다. 적절한 법적 절차와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불가피할 때 하는 것이 직권상정입니다. 지난번에 내가 직권상정을 끝까지 거부한 것은 듀 프로세스를 거칠 수 있는데도 거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항상 국민을 보고 정치한다는 것이 자칫 독선적 위험에 빠질 수 있지만, 나는 어떤 것이 국민적 정당성을 가지냐는 고뇌 끝에 한번은(예산안 통과) 국민을 보고 했고 한번은(직권상정거부) 국민을 보고 안한 것입니다. 2월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국회운영 방향은.

“18대 국회가 잘 안풀린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꼭 지적해야 될 사항이 있습니다. 원내대표 중심으로 국회가 운영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국회의원 개개인이 자신의 헌법적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채 정당에 예속되고 있습니다. 정당의 힘, 영향력이 너무 커져버렸습니다. 정당이 국회의원들 개개인을 끌고 가버리는 것입니다. 국회법 정신에 따라 상임위원회를 활성화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나한테 직권상정을 해달라고 했던 대표적 법이 방송법, 소위 미디어법입니다. 상임위에 상정조차 안했고, 상정이 안됐으니 심의 한번 안한 것입니다. 그래놓고 직권상정을 해달라고 합니다. 상임위가 무시돼 버린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국회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원내대표들이 상임위원장들에게 권한을 주고 책임지고 하라고 해야 합니다. 상임위에서 도저히 안되겠다 해서 원내대표들에게 하라고 해야 합니다. 다음에 큰 차원에서 이야기하자면, 국회는 대화하고 협상하고 토론하는 곳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가지가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하나는 소수자에 대한 배려이고 두번째는 다수결의 원리입니다. 이 두개가 동시에 작동해야 합니다.”

―의장에 취임하면서 개헌 필요성을 강조하셨지만 경제위기가 불거지면서 개헌론이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임기종료전까지 개헌이 마무리돼야 한다는 입장이십니까.

“지금 예상치도 못했던 경제위기가 몰아쳤는데 개헌문제를 얘기하는 건 황당한 것 같기도 하고…. 헌법자문기구를 둬서 준비는 충실히 하고 있고, 2월로 사실상 활동을 종료시킬 것입니다. 내부연구는 2월로 끝나서 대체적 방향도 정립이 될 것입니다. 개헌은 결국 국회와 국민이 하는 것입니다. 아직 제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에 불신을 갖고 있다는 평이 많습니다.

“나는 청와대, 행정부, 국회에 다 있어봤습니다. 청와대하고 행정부도 시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전부 적이 아닙니다. 국가발전의 목표나 방향, 추진방법상의 차이지 본질적 차이는 아닙니다. 대화를 해야 합니다. 그런 예가 이번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었다고 봅니다. 오바마의 노력에도 공화당은 한표도 안 찍었습니다. 그것이 의회입니다. 다음번에는 아마 더 많이 동조할 것입니다. 처음부터 되는 게 아닙니다.”

―최근 요르단,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터키 등 3개국 순방을 하고 오셨는데, 홍해 - 사해 대수로 공사 등에 한국기업 진출 등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순방 소감 및 성과는.

“한마디로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교를 정부만 하는 시대는 지나가도 한참 지나갔습니다. 미국은 대통령제 국가이면서 의회가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유럽은 주로 의원내각제입니다. 국회의장이 가면 그쪽에서도 최고위층이 나옵니다. 요르단 국왕, 터키 대통령 등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몇사람 안 됩니다. 만나서 진지하게 얘기하면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돌아왔습니다. 요르단 국왕은 다른 정상회담 시간을 늦춰가면서 나를 만나주고 급히 헬기를 타고 떠날 정도였습니다. 터키는 530명이 국회의원인데, 363명이 한·터키 의원친선협회 회원입니다.”

leehun@munhwa.com

정리 = 김성훈기자 tarant@munhwa.com

■ 김형오 의장은

기자 출신으로 정부와 청와대에서 두루 근무, 정연한 논리와 합리적인 성품이 돋보인다. 1978년 동아일보 기자 재직 당시 강영훈 외교안보연구원장에게 발탁돼 외교안보연구원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대통령 정무비서관을 거쳤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자당 후보로 공천받아 정계에 입문한 뒤 내리 5선을 한 당내 중진으로 국회 내 대표적인 ‘정보과학통’으로 꼽힌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 속에서 당 사무총장을 맡아 박근혜 전 대표와 함께 위기에 빠진 당을 추스리는 데 기여했으며, 원내대표를 역임하면서 여야 간 관계를 원만히 조율해 정치적 능력도 인정받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부위원장을 맡는 등 이명박 정부 탄생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경남 고성(62) ▲경남고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국무총리 정무비서관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 ▲한나라당 원내대표 ▲이명박 대통령 후보 선대위 일류국가비전위원장 ▲대통령직인수위 부위원장 ▲14, 15, 16, 17, 18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