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신라의 대표적 향가인 ‘처용가(處容歌)’. 그 주인공 처용을 ‘삼국유사’는 동해 용왕의 아들로 묘사하고 있다. 그 반면 ‘삼국사기’는 신라 제49대 헌강왕 5년(879년) 3월, 왕이 동쪽 주군(州郡)을 행차하던 중 개운포(울산)에 이르렀을 때 해변에 나타난, 이상한 생김새와 괴이한 옷차림의 괴한이라고 했다. 야사와 달리 정사에서는 실존 인물로 설명한 것이다.

처용이 설화 속 주인공이 아니라 실재 인물이었다면 과연 누구일까. 신라 최대의 무역항 울산에 나타날 수 있는 낯선 외방인이라면 당시 지중해는 물론 홍해와 인도양, 태평양을 누비던 아랍인일 것이란 주장이 있다. 특히 ‘악학궤범’에 그려진 처용의 모습으로 미루어 무슬림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정수일, ‘이슬람문명’·창비, 2007) 그보다 150여년 앞서 신라의 대덕고승 혜초가 천축국(인도)과 대식국(아랍)을 다녀왔다는 사실(史實)은 이 추정에 무게를 더한다.

그런데 최근 신라 진평왕 때의 또다른 향가 ‘서동요(薯童謠)’를 둘러싼 새로운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지은이는 누구인가, 서동은 누구인가, 선화공주는 과연 누구에게 시집을 갔는가…. 전북 익산의 미륵사를 창건한 사람이 ‘서동요’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온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 내외가 아니라, 백제 귀족(좌평)의 딸인 무왕의 왕후라는 명문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면 의문들 가운데 ‘서동요’의 주인공 서동은 과연 누구일까. 신라의 원효라거나 백제의 무왕이라는 설, 동성왕 또는 무령왕이라는 설 등 여러 주장이 있다. 반면, 서동은 실존 인물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한자 의미 그대로 산마를 비롯한 약초와 산나물을 캐러 다니던 소년 무리를 가리키는 보통명사라는 주장도 있다. 초동·목동 등과 같은 집합명사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주장이 맞는지는 학자들의 연구 과제일 뿐….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사리봉안기의 명문이 사실인 경우 설화를 바탕으로 해마다 개최해 온 충남 부여군의 ‘서동·연꽃축제’도 내용을 일부 수정해야 할 처지라고 한다.

1400년 설화 속의 주인공 서동과 선화공주는 우리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설화는 당대 사람들의 비원이 담긴 픽션인가, 아니면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꾸민 논픽션인가.

[[황성규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