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존 로버츠 대법원장의 실수로 취임선서문의 어순을 바꿔 낭독했다.

“나는 내가 가진 능력을 다해 성실히 미국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미국 헌법을 존중, 수호할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는 미 대통령 취임선서문은 전통적으로 링컨 전 대통령의 1861년 취임식에 참석했던 성경에 손을 얹고 대법원장의 선창 아래 낭독하는 것이 관례. 미 연방헌법에 명시된 대로라면 ‘성실히(faithfully)’라는 단어는 ‘대통령직을 수행하고(execute the office)’ 라는 구절 앞에 나오지만, 대통령 취임 선서를 처음주관해보는 젊은 로버츠 대법원장은 선서문을 선창할 때 이 부분의 순서를 뒤바꿔버렸다.

이 부분을 그 자신이 하버드 법대지 편집장 출신의 엘리트 변호사인 오바마가 그냥 넘어갈 리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로버츠 대법원장의 ‘실수’를 즉시 알아차리고 이 부분에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렸지만, 이내 로버츠 법원장이 뒤바꾼 순서 그대로 선서문을 따라 읊었다. 취임선서식의 주인공이 대통령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미 사법부의 수장인 연방대법원장이 주관하는 자리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불협화음(?)이 오바마 대통령과 로버츠 대법원장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일화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보수 성향의 로버츠 대법원장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지명으로 대법원장에 오른 인물로, 공화당 행정부에서 오랜 기간 일했던 경험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로버츠 대법원장의 상원 인준 당시 반대표를 행사했었다.

오바마는 대통령 취임 후 첫 점심을 로버츠 대법원장과 함께 했는데 이 자리에서 로버츠는 자신의 실수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허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