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전북 익산 미륵사지석탑(서탑)의 중심기둥인 심주(心柱) 해체 장면. 가운데 심주의 사리공에서 금제사리기 등 5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국보 제11호 미륵사지석탑(서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은 다른 사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다양한 종류가 일괄로 출토됐고 가공수법도 정교하며 세련돼 부여 능산리 절터 출토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와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에 필적하는 국보급 유물로 평가된다. 500여점에 달하는 유물들은 사리공 밑 바닥에 녹색 유리판을 깔고 안치했으며 유물들을 감쌌던 천도 함께 발견됐다.

가로 15.5㎝, 세로 10.5㎝ 크기의 금판에 음각한 뒤 붉은색 칠(주칠·朱漆)을 해 글씨가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한 금제사리봉안기에는 좌평 사택적덕의 딸인 백제왕후가 재물을 희사(喜捨)해 가람(伽藍·미륵사)을 창건하고 기해년(己亥年)인 639년에 사리를 봉안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백제사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백제 무왕대 미륵사와 현재 서탑만 남아 있는 미륵사지석탑의 창건 내력을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금제사리봉안기에서 확인된 명문은 총 193자. 앞·뒷면 모두 11행이며 앞면에는 1행에 9자씩 모두 99자가, 뒷면에는 1행에 4~10자 등 다소 불규칙하지만 총 94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금제사리봉안기의 명문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과 함께 미륵사의 창건 목적과 시주(施主), 석탑의 건립연대 등을 정확히 밝혀주는 금석문 자료인 동시에 백제시대 서체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금제사리봉안기의 명문 내용이 선화공주와 관련된 내용을 빼고는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의 기록이 정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최연식 목포대 교수는 “사실 백제 말기 시대 상황으로 볼 때 적국인 신라의 공주가 무왕의 왕후가 될 수 있었을지에 관해서는 역사학계에서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다”며 “이번 명문은 백제왕후가 백제 귀족인 좌평 사택적덕의 딸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륵사의 발원 주체인 백제왕후와 그가 속한 귀족인 좌평 사택씨는 백제 대성 8족 가운데서도 가장 유력한 세력 중 하나로 654년 ‘사택지적비’를 남긴 가계이기도 하다.

사리장엄의 핵심인 금제사리호는 사리공 중앙에 금제사리봉안기와 함께 모셔져 있었다. 높이 13㎝, 어깨 폭 7.7㎝의 작은 병 형식이며 보주형(寶柱形) 뚜껑을 덮었는데 X선으로 내부를 투시한 결과 내·외함(內外函)의 이중 구조로 이뤄져 있음이 확인됐다. 사리호 표면의 다양한 문양과 세공기법은 백제 금속공예의 우수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백제 사리기로는 지난 2007년 10월 충남 부여 왕흥사지 목탑터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가 유일했다.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앞·뒷면에서 총 193자의 명문이 확인된 금제사리봉안기 앞면.